




2026년 문학고을 상반기 계간지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심사평 (제 81회 1차 공모)
< 엘리트문학의 산실/ 등단의 길잡이>
김기혁 시인의 <불면증> <어머니의 노각 무침>
존재론적 사유와 미학적 성취
<불면증>은 해학적인 어조를 취하며 내면의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사유를 흥미로운 표현으로 정교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디만큼 왔을까 / 가늠할 수가 없네”라는 단순한 불면의 호소가 아닌 ‘잠’은 삶의 리듬이자 안식의 은유로 기능한다.
“울 엄마 꿀에 인삼 재우듯 / 울 아부지 소주잔에 인생 재우듯”은 이 시의 핵심적인 미학적 전환점이다. 꿀과 소주라는 대비적 매개는 각각 보호와 의무, 체념과 마비와 같은 여러 감각들을 소환한다. 이는 김기혁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이러한 회고적 특징이 보여지며, 이러한 시선은 시인의 시 세계를 만드는 핵심이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의 역설은 재미를 더한다. “내가 잠들어 잠이 다녀갔을지 모르니 / 두 눈 부릅뜨고 밤새 지켜야겠다”라는 표현으로 잠들지 못하는 자아가 스스로를 객체화하는 아이러니를 형성한다. 이렇듯 <불면증>은 불면증에 대한 사유의 깊은 사유를 밀도 있게 드러낸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어머니의 노각 무침>은 한국 서정시의 전통적 계보 위에 놓인 작품으로 음식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의 삼중 구조를 통해 모성 서사를 구축한다. 그러나 이 시가 단순한 향수 시를 넘는 지점은 그 감정의 작동 방식이 철저히 ‘현재형 상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마가 끝난 이맘때”의 어머니의 노각 무침은 단순한 음식보다는 매개로 한 기억의 저장고로서의 역할을 한다. 특히 시에서 보이는 어머니의 시선이 매우 눈에 띈다. “왜 이리 턱주가리만 삐쭉하냐고 / 밥 먹는 내내 얼굴만 빤히 바라본다”에서 어머니는 말보다 시선으로 존재한다. 이 응시는 보호이자 염려이고 동시에 화자의 그리움을 암시하는 역설적 현재성이다. 어머니는 밥상 곁에 있지만 이미 기억 속 인물로 이동해 있다. 그리고 화자의 정서는 자연으로 위탁되며 그리움을 극대화시킨다. 음식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남고 기억은 결국 현재의 눈물로 귀결되는 순환 구조가 이 시의 가장 큰 미학적 성취로 보여진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정소현 시인의 <비 온 끝> <기타 선율>
내면 서사의 감각적 서사와 깊은 서정
정소현 시인의 <비 온 끝>은 자연 현상을 외부 세계의 사건으로 두지 않고 정신의 격랑과 내면 풍경으로 치환하는 작품이다. “지금 밖엔 폭풍우가 몰아친다”와“세상을 삼킬듯 마음을 삼킬듯”이라는 중첩 구조를 통해 자연과 주체의 경계는 즉시 붕괴된다. 특히“응급실에 뛰는 맥박처럼”이라는 비유는 이 시의 미학적 핵심 중 하나다. 이는 단순한 긴박감의 묘사가 아닌 세계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음처럼 긴박함을 전한다. 시인은 자연을 의인화하는 대신 인간의 신체를 자연의 리듬에 예속시킨다. 정소현 시인의 비유는 매우 감각적이다. 이러한 신체의 일부를 보여주며 “어젯밤 밤새 울고 아침에 일어나 / 곱게 화장한 계집의 얼굴 같구나”로 감각적인 환기를 일으킨다. 마치 고통을 지운 얼굴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회복이 아니라 위장된 정상성이다. 정소현 시인의 이러한 인식은 브레히트의 냉소적 현실 인식이나 박인환의 전후 허무주의와도 연결된다.
<기타 선율>은 삶을 예술 행위로 치환하는 전통 은유를 사용하면서도 그 사유의 방향은 단순한 낭만주의를 넘어선 현대적 인식을 보여주는 시인의 저력이 있는 작품이다. 기타는 감상의 대상이 아닌 매일 손끝이 닳도록 다뤄야 하는 도구이며, 이 점에서 이 시는 예술을 삶의 비유로 삼지만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특히 “삶의 비탈진 연주”라는 표현은 인상적이다. 인생은 평탄한 악보가 아닌 미끄러지고 흔들리는 경사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연주다. 이는 불안정 자체를 삶의 본질로 승인하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단지 우리는 오늘도 / 내일의 기타연주를 위해 / 열심히 연습 하네”에서 보이는 시인의 정서는 여기서 인생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의 반복으로 정의된다. 박수는 불확실하지만 연습은 오늘의 몫이다. 〈기타 선율〉은 계속 연주하고 싶은 인생을 말하고 있으며, 박수가 없어도 현을 튕기는 손이 멈추지 않는 한 삶은 이미 연주 중이라는 조용한 선언이 이 작품의 종착점이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장숙희 <겨울> <겨울 바다>
철학적 사고와 감정의 공명적 구조
장숙희 시인의 <겨울>은 시간에 따른 존재 태도의 재정립을 다루는 철학적 서정시다. 이 작품에서 ‘겨울’은 결핍이나 종말보다 속도의 세계로부터 잠시 이탈할 수 있는 인식의 계기로 작동한다. “겨울 철길 위로 하루가 지나네”에서 ‘철길’은 중요한 상징이다. 철길은 본래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 선형적 공간이다. 그러나 이 철길에서 이제 쉬어도 된다고 말하는 시인은 인간이 시간을 몰고 가는 존재로서가 아닌 시간 위에 놓인 존재임을 조용히 전도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도구적 세계(Zuhandenheit)’에서 벗어나 ‘존재의 현존(Vorhandenheit)’으로 돌아오는 순간과도 맞닿는다. 흥미로운 부분은 시에서 “가보지 못했던 공간 속을 지나 바쁘게만 살아 왔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스스로 화자는 답을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 않다네”라는 화자의 대답은 새로운 시각으로 전환시키며, 장숙희 시인의 서정과 사유가 드러난다.
<겨울 바다>는 상실과 그리움을 감각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으로 소리, 공간과 감정의 공명 구조가 매우 정교하게 구축된 시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억눌린 감정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넘실대는 심연이다. “눈 내리는 겨울바다는 / 싸리문 여는 소리를 낸다”는 탁월한 감각적 전치를 보여주는 시인은 바다의 파음을 ‘싸리문’에 비유함으로써, 거대한 자연을 갑자기 사적인 공간의 경계음으로 축소시킨다. 이 방식은 김춘수의 감각 전이 기법이나, 일본 하이쿠의 미시적 자연 인식과도 비교 가능하다. 또한“소리 내어 맘껏 울어 보리라”의 이 울음은 치유라기보다 존재 확인의 행위에 가깝다. 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는 애도의 끝이 아닌 애도를 견딜 수 있는 주체의 탄생에 가깝다. 장숙희 시인의 〈겨울 바다〉는 감정을 절제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가장 뜨거운 울움을 품고 있는 바다를 만들어 낸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근수 시인의 <스쳐 간 자리> <나는 나무의 언어가 되어>
관계의 미학과 밀도 높은 사유
이근수 시인의 <스쳐 간 자리>는 관계가 남기는 잔존 효과(residue)를 사유하는 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사라짐’에 있지 않고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되는 정서적 퇴적층에 있다. 시는 저녁빛, 발자국, 그림자와 같은 낮은 강도의 이미지들로 구성되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감정의 과잉을 피하고 기억이 작동하는 미세한 순간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전략이다. 나열되는 “표정들 / 숨결들 / 작은 몸짓들”은 관계의 본질이 거창한 사건이 아닌 비언어적 교류의 축적이었음을 환기한다. 이 지점에서 시는 프루스트적 기억관과 맞닿는다. 기억은 의지로 호출되지 않고 “소리보다 먼저” 감각적으로 침투한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중첩되어 현재를 구성한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화자의 태도는 성숙한 거리감을 보여준다. 〈스쳐간 자리〉는 관계를 붙잡지 않는다. 대신 관계가 남긴 자리를 정직하게 응시한다. 이 응시의 태도 자체가 시인의 정체성이며 미학이다.
<나는 나무의 언어가 되어>는 시인의 시 중에 가장 밀도가 높고 사유가 깊다. “여름은 오래된 책장처럼 갈라져”라는 시어를 통해 시인은 계절을 텍스트로 전환하는 메타포를 보여준다. 이는 릴케의 사물시(Dinggedicht)를 연상시키지만 대상에 침잠하기보다 대상과 언어의 경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더 급진적이다. “시간은 나를 종잇조각처럼 살짝 다듬는다”라는 표현도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인간은 더 이상 시간을 인식하는 주체로서가 아닌 시간에 의해 편집되는 객체라는 시인만의 시선이 매우 신선하다. 특히 “나이테의 음각 문장들”이라는 구절 또한 뛰어나다. 나이테는 기록이지만 발화되지 않는 언어이며, 이는 곧 시가 도달하고자 바를 시인은 감각화하여 전달한다. 이 시에서 ‘나’는 계절이 쓰는 문장의 일부가 된다. 겨울을 앞둔 “침묵의 활자”는 죽음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다음 독해를 기다리는 텍스트의 상태라는 시인의 사유가 매우 신선하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 시 안에서도 충분히 실험적이며, 성취도 높은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수필 부문
김경미 작가의 <여름밤 합창>
개인적 체험을 통해 세대 간 감정의 전이와 부모 역할의 본질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화자의 <여름밤 합창>은 총알이 날아든 뉴스를 보고 화자의 내면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부모로서 책임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고, 그 순간 어린 시절 여름밤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 구조는 개인적 기억이 어떻게 세대를 건너 반복되고 이어지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의 존재 방식이다. 고립된 집, 공비 소문, 밤의 적막이라는 극도의 불안 속에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공포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노래를 시킨다. 노래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두려움을 억누르고 밤을 통과하기 위한 어머니만의 방패였다. 아이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노래하고 웃었고, 그래서 그 밤을 ‘무서운 기억’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여기서 글은 보호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보호는 반드시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위험을 모르게 감싸는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어머니의 고백은 이 수필의 정서적 중심이다. 어머니 역시 극심한 공포 속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화자는 과거를 새롭게 해석한다. 즐거웠던 합창은 사실 어머니의 떨리는 숨 위에 놓여 있었다. 이 깨달음은 현재의 화자에게로 돌아와, 지금 자신이 느끼는 불안이 과거 어머니의 그것과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렇게 이 글은 부모의 두려움이 어떻게 사랑으로 전환되는지를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이글은 두려움을 견디는 가장 조용하고 강한 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수필이다. 등단을 축하하며 한국 문단에서 사랑받는 작가로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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