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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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문학고을 계간지 상반기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당선 심사평 제 82회 1차 공모 (엘리트 문단의 산실/ 등단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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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27 2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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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문학고을 계간지 상반기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당선 심사평 제 82회 1차 공모
(엘리트 문단의 산실/ 등단의 길잡이)


<시 부문>

김장미 시인의 <김장> <3월이라고 쓰고 초봄을 누린다>

일상 소재의 철학적 인식과 형성

김장미 시인의 <김장>은 한국 서정시의 중요한 계보 중 하나인 생활 서정을 계승하면서도 찰나의 현상을 포착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김장은 전통적으로 공동체적 산물 혹은 계절 의례로 인식되어 왔으나, 이 시는 그러한 관념적인 상황보다 감각의 반응을 따라가며 관계 맺는 주체의 방식을 오히려 드러낸다. ‘노오란 절인 배추’와 ‘벌겋게 옷을 갈아입는’ 장면은 사물의 변화를 색채의 전이로 포착한다. 이러한 구성은 베르그손적 의미의 ‘지속(durée)’ 개념과 맞닿아 있다. 즉 시인은 김장을 하나의 완료된 사건으로 보지 않고 감각이 중첩되며 축적되는 시간 경험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빨간 손들’의 시어로 주체는 개인적 감각에서 공동의 신체로 이동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개별적 인격체로 서술되지 않으며 먹는 행위 앞에서 동일한 신체적 반응을 보이는 존재들로 배열한다. 시인은 음식을 통해 공동체가 유지되는 이유를 이미 몸의 반응 속에 내재해 있음을 보여주는 정겨운 시각을 포착하여 예리하게 보여준다.

<3월이라 쓰고 초봄을 누린다>는 계절을 인식의 상태 변화로 사유하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3월’이라는 객관적 시간 단위와 ‘초봄’이라는 체감적 시간 개념을 병치함으로써, 시는 시간의 이중 구조를 전제한다. 화자에게 겨울은 단순히 지나간 계절보다 ‘헝클어진 상태’로 형상화된다. 그러나‘안간힘을 쓰고 순을 터트린다’라는 표현을 통해 생명의 발생을 자연의 자동적 질서로 환원하지 않고 저항과 긴장을 내포한 생성 행위로 재인식하게 한다. 이 부분은 매우 시인으로서 깊은 사유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봄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되는 상태에 가까운 부분도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푸른 희망’의 산란을 보여주며, 시인이 희망은 하나의 중심을 갖지 않고 확산되는 생명성으로 제시하는 부분도 매우 훌륭하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김채윤 시인의 <휠체어의 소망> <기억의 태엽>
비가역적 희망과 역설

김채윤 시인의 <휠체어의 소망>은 사물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휠체어를 단순한 의인화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휠체어는 인간의 취약성과 시간을 함께 감내하는 존재론적 동반자로 설정되며, 이러한 화자 설정은 김수영의 사물 인식이나 백석의 생활 사물 서정과 닮은 지점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회적 비판이나 향토적 정조보다는 윤리 이전의 존재적 연대가 핵심에 놓인다.

시의 전개는 이동의 서사로 구성되지만, 목적지에 대한 지향은 끝내 부정된다. 바퀴는 어디로 가는지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직 “당신이 간다면”이라는 조건문 속에서만 존재 이유를 획득하는 부분이 새롭다. 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를 향한 존재’와 유사한 구조로 휠체어의 존재 의미는 자기 완결이 아닌 타자의 삶에 대한 응답성에서 발생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휠체어가 자신의 소멸을 소망하는 역설적 진술이다. “제 바퀴가 당신 곁에서 사라지는 날”을 기다린다는 표현은 회복의 서사를 감동적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회복을 승리나 극복의 언어로 포장하지 않는다. 이는 시인이 목적론적 서사를 거부하는 현대 서정의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의 태엽>은 기억 상실과 노년의 시간을 다루면서도 비극적 정조를 전면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는 기억의 붕괴를 하나의 시간 질서의 전환으로 사유한다. ‘태엽’이라는 은유는 기억을 저장 장치로 이해하는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기억을 반복과 회귀의 운동으로 인식하게 한다. 특히 김채윤 시인이 개인의 내면 회상보다 가족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시간의 엇갈림에 주목하는 부분이 매우 신선했다. 부모는 “같은 우주를 여행”하지만 그 우주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고정되어 있다. 집을 잊고 집 안에서 집을 찾는 장면은 공간 감각의 붕괴를 보여주는 동시에 존재의 근거를 잃은 상태를 상징한다. 이때 집은 물리적 장소에서 벗어나 삶이 정합적으로 작동하던 시간의 총합을 보여준다. 특히 자식의 위치는 이 시에서 극히 절제되어 있다. 화자는 부모를 돌보는 주체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오히려 “잊힌 문턱을 넘고 또 넘는” 존재로 묘사된다. 시인은 서술적 설명을 배제하고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인식의 균열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기억을 보존하려는 욕망보다 기억 속에 조용히 머무르려는 사랑의 형식을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류성원 시인의 <엄마의 손> <눌어 붙은 숨>
감각 중심의 사유, 그리고 그 깊이

류성원 시인의 <엄마의 손>은 모성 서정을 다루면서도 감정의 고조나 회고적 미화를 철저히 절제한 시다. 시의 중심에는 ‘엄마’라는 인물보다 손의 움직임과 사물의 반응이 먼저 배치된다. 이는 한국 현대시에서 흔히 발견되는 정서 중심적 모성 표상과 거리를 두며 몸의 흔적을 통해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을 보여주면서 류성원 시인만의 시어를 확립한다. 첫 연에서 등장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는 단순한 청각적 효과가 아니라 일상의 반복성이 축적된 리듬으로 기능한다. 특히 그릇이 “몸을 낮춘다”는 표현은 시인이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깊은 감각 중심의 사유가 깊다는 것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또한‘손등의 색 변화’는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가장 압축적인 기호다. 여기서 시간은 피부에 각인되는 감각적 흔적이다. 시인이 보여주는 엄마의 하루는 서사로 설명되지 않고 손의 색과 젖은 소매라는 잔여물로만 남는 부분도 매우 감각적이다. 이 작품은 모성의 헌신을 찬미하지 않으면서도 그 손이 남긴 자리를 조용히 응시하는 데서 멈춘다. 이 절제된 시선이야말로 작품의 미학적 긴장을 형성한다.

<눌어 붙은 숨>은 육체적 고통을 개인적 체험으로 환원하지 않고 생존의 조건 속에서 구조화된 감각으로 제시한다. ‘숨’은 생리적 기능과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최소 단위의 운동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숨은 원활히 순환하지 못한다. ‘문턱’에서 반복적으로 막히며, 여기서 문턱은 공간적 경계이면서 임계점으로 작동한다. 시의 언어는 호흡의 리듬을 그대로 따르듯 짧고 끊어진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의미를 해석하기 이전에 먼저 호흡의 불편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인의 형식적 선택 또한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들숨과 날숨의 비대칭은 생존의 불균형을 상징하며, 살아 있음 자체가 점점 더 많은 저항을 요구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절구통’과 ‘절구공’의 비유는 반복 노동의 구조를 환원시키면서도 그 안에 갇힌 개인의 마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아직은, 아니다”라는 반복은 희망의 선언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는 내려앉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금지 명령에 가깝다. 이는 미래 지향적 결의를 벗어나 현재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시인의 ‘아직은, 아니다’라는 시어는 소멸되지 않기 위해 호흡하는 존재를 보여주며, 마음속 메아리처럼 울린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순임 시인의 <빨간 추억이 끓는다> <포구에 내려앉은 봄>

정서적 소비가 아닌 기억의 감각으로의 부활

이순임 시인의 <빨간 추억이 끓는다>는 음식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매개로 기억의 시간성을 호출하는 서정적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단순한 회고나 향수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기억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장작이 “숨을 거두고” 할머니의 수건이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다”는 병치는 인간의 신체와 사물이 동일한 시간의 피로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순임 시인만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는 김수영의 노동 인식처럼 사회적 발화로 나아가지는 않지만, 일상의 미시적 장면 속에서 시간의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계승된다. 동치미와 김장김치는 계절의 기억을 촉각적·미각적으로 환기시키며, 어린 시절의 허기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던 방식 그 자체로 제시된다. 이 작품에서 팥죽은 더 이상 먹는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가장자리를 베어 무는” 존재로 전환된다. 시인은 추억을 미화하지 않는다. 식어가는 붉은 숨을 응시함으로써 기억의 유한성과 그럼에도 남는 감각의 잔여를 사유한다.

<포구에 내려앉은 봄>은 봄이라는 계절을 시인은 관습적 생명성이나 환희로 선택하지 않고 포구라는 공간을 드러내며, 염분의 감각 속에서 재구성하는 첫 시어가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계절의 정서를 미각으로 환원하며, 이후 전개될 세계 인식의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부분이 매우 탁월하다. 봄은 이미 닳아 있는 삶 위에 내려앉는 상태로 나타난다. 활어를 실은 배와 파닥이는 생선들은 생동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소비와 생계의 현장을 드러낸다. 생선의 움직임은 자유가 아니라 포획 이후의 잔여적 운동에 가깝고 이는 포구의 봄이 가진 이중성을 강화한다. 어린 계절을 품었던 얼굴이 구릿빛에 가려지는 장면에서는 시간의 누적이 신체에 남기는 흔적이 명확히 드러난다. 갈매기 울음은 자연의 배경음이며 동시에 바다에서 늙어버린 삶을 증언하는 음성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갯벌 저편의 유채 군무는 이 세계가 완전히 소진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미세한 균열로 작동한다. 이렇게 시인은 짠물에 몸을 맡긴 채 지속되는 삶의 한 국면으로 제시하며 새로운 봄을 시에서 펼치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강노 시인의 <설설 걷는 마음> <나만의 시간>
삶에 대한 절제된 응답

이강노 시인의 <설설 걷는 마음>은 외부의 자연 현상과 내면의 심리 상태를 병치하는 전통적 서정의 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감정의 과잉을 피하고 태도의 윤곽을 중심으로 시적 사유를 전개하는 부분이 개성적이다. 특히 ‘언 바닥’과 ‘하얀 눈’의 중첩은 위험이 가려진 상태를 암시하며, 세계가 명확히 인식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의 조심스러운 존재 방식을 강조한다. 중심 어휘인 ‘설설’은 이 시의 미학적 핵심이다. 이는 속도의 문제라기보다 태도의 문제로 제기된다. 이는 삶을 대하는 화자의 선택으로 급진적 돌파나 결단 대신 “조심조심 짚어 가며” 나아가는 모습을 조명한다. 김종삼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낮은 목소리의 실존 인식과도 닿아 있으나, 이 시는 허무보다 회복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 한파와 근심을 바람에 흘려보내고 다시 “파고들어 가 보련다”는 진술은 도피를 벗어난 자기 내부로의 재진입을 의미한다. 이는 고통의 제거가 목적이 아닌 감내의 방식 전환에 가깝다. 이강노 시인의 이 작품은 해결을 제시하지 않지만, 마음을 다루는 하나의 태도를 제안함으로써 조용한 사유의 여백을 보여준다.

 <나만의 시간>은 공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인간 관계의 밀도와 고독의 성격을 탐구한다. 표면적으로는 도시와 시골의 대비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요’와 ‘쓸쓸함’의 차이를 섬세하게 분별하는 시적 사유가 중심을 이룬다. 화자가 기대했던 ‘한적함’은 곧바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드러나는 것은 관계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정적이다. 제시되는 과거의 사랑방은 단순한 향수의 공간이 아니다.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는 장면에서의 이야기는 생산물 이전에 발생하는 온기이며, 삶의 본질을 암시한다. 화자는 완전한 고요를 이상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대낌’ 속의 생기를 선택한다. 시인이 말하는‘나만의 시간’은 고립된 시간이라기보다 타인과 섞이며 비로소 실감되는 시간으로 재정의된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고요란 무엇인지 조용히 질문한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심사평

염정숙 시인의 <그리움> <골목길>

짙은 현상학적 사유

염정숙 시인의 <그리움> 은 아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에서 출발해 본질로 점차 깊어지는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유리창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그 자체로 인지된다. 화자는 유리창 너머의 아이를 직접 만지지 못하고 반사된 빛과 움직임으로만 인식한다. 이렇게 염정숙 시인은 매개를 통해 이루어진 현상학적 사유를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마치 인상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빛과 색이 먼저 제시되는 시선을 보여주며, 이는 독자로 하여금 많은 사유를 하게 한다. 그러나 시는 감각의 나열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치 베르그송이 말한 시간의 지속 개념과 유사한 시선을 보여주며 시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그리움>에서는 상징주의 시에서 보여지듯 구체적 대상이 자연 이미지로 전환되며 의미가 확장된다. 시인은 서정적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짙은 사색을 이 작품에서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골목길>은 장소를 중심으로 기억이 어떻게 축적되고 형성되는지 보여 주는 시다. 특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마주한다는 표현은 매우 감각적이다. 시에서 전봇대에 붙었던 광고지의 흔적인 찢어진 자국만 남아 있는 모습은 현실적인 일상과 그 잔여를 보여주며 주제를 극대화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강아지의 짖음은 정지된 풍경에 생동감과 청각적 심상을 더한다. 이 소리들은 특정 순간을 넘어 하나의 기억 덩어리로 작동하며, 시는 소리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온다. 이를 통해 경험이 감각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부분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시인의 충분한 자질을 증명한다. 화자는 그 흔적을 통해 오래된 동네의 시간을 느낀다. 또한 기억 자체를 사랑하고 그곳을 그리워한다고 고백하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삶의 방식을 펼친다. 이렇게 시인은 <골목길>에서 사실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사라져 가는 공간과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차분히 되짚으며 아름다운 기억의 공간을 현실에서 재생시키는 깊은 감각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홍희자 시인의 <화이트 아웃> <우산>
사유의 개성있는 방향성과 상상력

홍희자 시인의 <화이트 아웃>은 자연 현상에서 출발하지만, 곧바로 인식의 문제로 이동하는 사유시의 성격을 지닌다. ‘화이트 아웃’은 시각적 혼란의 상태이며 방향 상실의 은유로 작동한다. 이렇게 홍희자 시인은 세계와 자아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화자는 구름과 땅이 맞닿는 착시를 바라보며 함께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는 대상 관찰이 곧 자기 인식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로 주체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를 드러낸다. 이러한 인식 방식은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이름 붙이기 이전의 존재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김춘수가 언어 이전의 순수한 존재를 지향했다면, 이 시는 오히려 언어와 판단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에서의 ‘멈춤’을 강조한다. “움직이지 말고 하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시어는 적극적 선택이나 결단을 유예하는 태도이며, 행동 중심과는 다른 시간 감각을 제시한다. 특히 ‘방치도 포기도 아닌 시간’이라는 표현은 무위와 무책임 사이의 미묘한 지점으로 독자로 하여금 깊게 사유하게 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다림’의 태도와도 닿아 있으며,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개입을 유보하는 방식이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혼란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혼란 속에서 버티는 법을 제안한다. 명확함보다 지속을 선택하는 시인 내면의 강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우산>은 상실의 정서를 벗어나 정지된 슬픔에 머물지 않고 이동과 전환의 경험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 우산이라는 사물의 시선을 따라 시를 지배하는 정서는 버려짐 이후의 체념을 함께 겪게 된다. 그러나 이 체념은 언제든 다른 방향으로 흔들릴 수 있는 잠정적 멈춤에 가깝다. 그러던 중 “누가 나의 손을 잡고”라는 반전의 사건이 발생하며, 시는 급격히 동적인 방향으로 전환된다. 또한“경쾌함은 계속 손을 잡고 뛰고 있었다”라는 시어를 통해 움직임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며, 이는 전체적으로 시인의 매우 짙은 상상력을 보여준다. 특히“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라는 시어는 시인의 유머와 재치를 보여주고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며,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동하는 행위라는 시인의 관점 또한 매우 훌륭하다. 홍희자 시인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한준혁 시인의 <강물에 쓰는 시> <김장>
깊은 사유의 폭과 정체성

한준혁 시인의 <강물에 쓰는 시>는 소멸성과 존재의 유동성을 사유하는 철학적 서정시로서 인식 중심적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강물은 질문하지 않는 존재로 제시된다. 이는 자연을 교훈적 대상으로 삼았던 낭만주의적 자연관과 달리 인간의 감정을 비추되 개입하지 않는 현상학적 자연 인식에 가깝다. 강물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흐르며 마음을 데려간다. 여기서 말보다 마음이 먼저 이동한다는 인식은 언어 이전의 감각과 정동을 중시하는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붙잡지 않는 연습’으로서의 시 쓰기는 시를 소유의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로 위치시킨다. 이는 백석이나 김수영의 현실 참여적 언어와는 다른 방향으로 정현종 계열의 존재론적 서정과 비교될 수 있다. 이 시는 말이 사라질 때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역설을 통해 현대시의 미니멀한 미학과 깊은 사유를 동시에 성취한다.

<김장>은 단순한 풍속화나 향수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시간을 저장하는 행위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에서 찬바람과 손끝의 감각은 계절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인식되는 조건으로 등장하며, 이는 자연과 인간의 감각적 결합을 중시하는 사실주의적 서정의 특징을 보여준다. 붉은 고춧가루 속에 ‘한 해가 접힌다’라는 표현을 통해 시간의 압축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부분 또한 탁월하다. 또한 배추의 결 사이에 눌려 앉는 말들이나 ‘웃음이 늦게 끓는다’라는 시어 또한 한준혁 시인의 깊은 사유를 느낄 수 있다. 이는 감정의 즉각적 표출이 아닌 시간을 두고 발효되는 정서의 표현이며, 이는 김장이 지닌 본질이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에 김장을 ‘겨울을 건너기 위해 정과 마음을 독 속에 묻어 두는 일’로 정의함으로써 시는 생존의 기술과 감정의 지속을 하나의 행위로 묶어낸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허정동 시인의 <우회전> <태종대>
교차의 지점을 포착한 절제된 애도

허정동 시인의 <우회전>은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기억이 호출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서정시다. 작품의 구성은 비극의 크기가 아닌 사소한 동선 하나가 어떻게 기억 전체를 끌어올리는가에 있다. ‘놀이터 지나 우회전’이라는 말은 생전에 무심히 지나갔던 생활 정보에 불과했지만 운구차의 실제 이동과 겹쳐지며 갑작스레 결정적인 언어로 변모한다. 이는 기억이 의도적으로 저장되는 것을 넘어 우연한 계기 속에서 재배열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이 매우 눈에 띈다.  또한 이 시는 정서적 여백을 최소한의 사건 나열로 유지하며, 애도의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는다. 친구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 또한 과장되지 않으며, ‘천천히 먹던’ 식사 습관 하나로 인물의 성격과 친밀감을 충분히 환기한다. 이는 시인이 인물을 설명하기보다 행위의 리듬으로 존재를 남기는 방식이다. 시인은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방향을 잃은 기억이 우회전하듯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애도가 얼마나 일상적인 움직임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태종대>는 회고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려는 전통적 서정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태종대라는 장소는 관광지이자 자연 경관의 상징이지만, 시 안에서는 감상적 배경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말 겨루기’를 보기 위해 서둘러 돌아가야 했던 일상의 시간 감각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이는 거대한 풍경보다 개인의 습관과 리듬이 기억을 더 강하게 규정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화자가 장례식장에서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시어는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적 태도를 거부한다. 이는 기형도의 시에서 자주 보이는 이유 없는 슬픔과도 비교될 수 있으나, 이 작품은 절망으로 기울지 않고 담담한 인식에 머문다. 눈물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시인에게는 그 자체로 남겨진 사실이다. “주은 것일지도 혹은 죽은 것일지도”라는 언어 유희를 통해 시인은 삶을 획득이나 성취의 과정으로 보지 않는 실존적 시선을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수필 부문>

권은숙 수필가의 <깨진 됫병과 부풀어 오르는 김>
현재의 감각으로 재편되는 언어화의 탁월성

수필 <깨진 됫병과 부풀어 오르는 김>은 화자의 기억을 매개로 삶의 지속과 파열의 순간을 서사적으로 응시하는 성찰적 산문이다. 이 작품은 체험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이 현재의 감각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언어화하며 수필 장르가 지닌 사유적 깊이를 충실히 드러낸다. 일상적 경험을 문학적 인식의 장으로 전환하는 수필의 핵심이 이 글 전반에 걸쳐 견고하게 작동한다.

서술은 화자의 질문에서 출발해 어머니의 기억으로 이행되며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기보다 정서의 무게에 따라 재배치된다. 부모가 각자의 방에서 살아온 세월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침묵과 긴장이 응고된 생활 세계로 제시된다. 침묵의 성벽과 포탄이라는 비유는 감정의 상태를 공간적 이미지로 치환하며 수필 특유의 은유적 사유를 강화한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구체적 생활 장면의 밀도 높은 포착에서 두드러진다. 강릉 중앙시장과 남대천이라는 장소는 회상의 배경을 넘어 어머니의 삶이 작동하던 현실의 좌표로 기능한다. 양은 솥에서 끓어오르는 추어탕과 쉼 없이 이어지는 노동의 장면은 육체의 감각을 통해 시간의 누적을 가시화한다. 이러한 서술은 한국 수필 전통에서 중시되어 온 생활 감각의 사실성과 긴밀하게 호응한다.

깨진 됫병 장면은 이 글의 중심 사건으로 작동하며 서사의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소주병이 벽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은 억눌려 있던 감정이 외부로 표출되는 계기이자 가족을 지탱해온 취약한 균형이 붕괴되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 사건을 설명이나 판단으로 덧붙이지 않고 장면 자체의 충격과 잔향에 의미를 맡긴다. 이는 수필이 지녀야 할 서술의 긴장과 절제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이 수필에서 탁월한 부분은 어머니의 선택과 행위는 작품의 방향을 전환시키고 농사를 시작하고 집을 짓는 과정은 삶을 다시 조직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바로 기억은 과거에 고정되지 않고 현재의 힘으로 전이된다. 어머니의 모습은 감정의 폭발 이후에도 삶을 지속시키는 주체로 형상화되며 이는 작가가 한국 수필에서 반복되어 온 생존의 서사적 계보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찐빵과 김의 이미지는 서사의 정서를 수렴하는 상징적 장치다. 특히 김은 보이지 않으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생의 호흡을 환기하며 기억이 현재의 감각으로 살아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이로써 작품은 비극적 회고에 머물지 않고 삶의 지속성을 사유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정영숙 수필가의 <기다림>
시간 감각화의 변화를 서사화한, 아름다운 성찰

수필 「기다림」은 일상적 체험을 매개로 시간 감각의 변화를 서사화한 성찰적 산문이다. 이 작품은 농사와 양육이라는 반복적 노동의 경험을 통해 인간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재사유하며 수필 장르가 지닌 사유적 밀도와 정서적 응집력을 동시에 드러낸다.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하지만, 그 체험이 지닌 보편적 구조를 언어로 포착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현대 수필의 미학적 지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작품의 서두에서 제시되는 달력과 절기는 시간의 객관적 단위를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아들이 외우는 절기의 명칭은 계절을 인식하는 언어적 표식이며 화자는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수필에서 자주 활용되는 일상 사물의 기호화 방식으로 추상적 개념인 시간을 구체적 감각의 차원으로 환원한다.

이 수필에서 화자의 일상은 서술을 넘어 사유의 매개로 작동한다. 새벽의 농기계 소리와 밭의 흙을 밟는 감각은 화자를 일상의 주체로 재위치시키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몸의 차원에서 다시 구성한다. 흙 속에서 돌과 비닐을 걷어내는 행위는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노동으로 묘사되며 이는 내면 정돈의 은유로 확장된다. 이러한 전이는 수필 장르가 지닌 상징적 사고의 핵심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기억의 재배치 방식이다. 화자는 과거의 선택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호출하며 그 의미를 재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수필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기억의 재구성을 수행한다. 수능 성적표 앞에서 비로소 포착되는 아이들의 표정은 지연된 인식의 순간으로 제시되며 시간은 여기서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고 뒤늦게 의미를 드러낸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수필이 시간의 경험을 비동시적으로 배열할 수 있는 장르임을 잘 보여준다.

작품은 점점 기다림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한다. 기다림은 수동적 정지가 아닌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태도로 전환된다. 감자의 생장과 아이들의 성장 그리고 화자의 변화는 동일한 리듬 안에서 병치되며 삶의 속도가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는 자연의 순환적 시간과 인간의 체험적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수필의 사유가 가장 깊어지는 대목이다.

화자는 말한다. 더 이상 앞서가야 할 지점을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머물러야 할 위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다림은 결핍의 상태가 아닌 충만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화자의 내적 변화는 조용한 문체 속에 흡수된다. 작가는 시간 인식의 변화를 치밀하게 형상화하여 감각적 서술과 상징적 전이가 긴밀히 결합하는 구조를 통해 깊게 사유하는 자리를 보여준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의미가 늦게 도착하는 순간을 포착한 이 글은 수필 장르가 지닌 성찰적 가능성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성취라 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전영희 수필가의 <마음 속에 피어난 작은 정원>
관계적 사유와 탁월한 은유

수필 「마음속에 피어난 작은 정원」은 치유의 현장을 기록하면서도 감정의 노출을 최소화한 관조적 태도를 유지하는 작품이다. 이 글은 상처 입은 주체들을 전면에서 보여주면서도 그들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몸의 움직임과 공간의 정서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박완서의 후기 수필에서 보이는 절제된 관찰자의 시선과 통하는 지점을 지닌다. 박완서가 고통을 겪는 타인을 묘사할 때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며 생활 장면에 집중했던 태도가 이 작품에서도 유사하게 감지된다.

정신건강협회라는 장소는 이 수필의 서사적 기반이자 심리적 안전지대로 기능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세이프 스페이스의 개념이 이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서사를 언어로 진술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놓이며 이는 방어기제가 잠시 이완되는 조건을 마련한다. 작가는 이 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같은 높이의 탁자와 고요한 교실이라는 장면 배치를 통해 암시한다. 수필이 이론을 설명하기보다 장면으로 사유를 전달하는 장르임을 잘 활용한 대목이다.

꽃꽂이라는 활동은 비언어적 표현 양식으로 기능한다. 이는 미술치료나 원예치료에서 강조되는 투사적 활동과 닮아 있다. 참여자들은 꽃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서 상태를 외부 대상에 옮겨 놓는다. 줄기를 세게 잡지 못하는 손과 한 손으로 꽃을 받쳐 드는 동작은 신체 기억이 감정 상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을 해석하지 않고 기록에 머무르며 독자가 자연스럽게 의미를 구성하도록 여백을 남긴다. 특히 침묵을 작업의 일부로 인정하는 장면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중단과 정지의 시간을 연상시킨다. 이는 회피나 공백이 아닌 자기 조절의 과정으로 읽힌다.

일흔아홉 노인의 발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스스로를 지는 꽃으로 인식하던 주체가 다시 피어남을 말하는 순간은 자기 서사의 재구성에 해당한다. 작가는 이 발화를 감동의 정점으로 소비하지 않고 담담하게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그 말의 무게를 천천히 받아들이게 한다. 이 점이 전영희 수필가의 매우 탁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작가의 작은 정원이라는 이미지는 내면 공간의 은유로 작동한다. 이는 윈니컷이 말한 중간 영역을 연상시키는 지점으로 현실과 내면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 만나는 장소로 읽힌다. 더 채우고 싶은 마음과 충분하다는 직감 사이에서 손이 멈추는 순간은 자기 조절 능력이 회복되는 장면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 수필은 치유를 목표로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회복이 시작되는 조건을 조용히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세계 사이에 다시 연결의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을 언어 이전의 감각으로 포착한다는 점에서 이 글은 현대 수필이 지향하는 관계적 사유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유규현 수필가의 <최고의 장면>
성장 서사와  뛰어난 내면 심리 묘사

유규현 수필가의 <최고의 장면>은 성장 서사의 외형을 띠고 있으나 그 핵심은 성취나 성공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태도 변화에 있다. 이 글은 형이라는 타자의 삶을 따라가는 화자의 시선을 통해 가족 안에서 형성된 비교와 거리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재조정되는 자기 인식을 조용히 포착한다. 서사적 사건보다 장면의 배열과 회상의 방향성이 중심에 놓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서사 수필의 형식을 취한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형과 화자 사이의 신체적 대비에서 출발한다. 작은 손과 큰 손이라는 이미지는 단순한 체격 차이를 넘는 다른 미묘한 감정을 상징한다. 화자는 형을 모범생으로 기억하며 부모의 관심과 자원이 자연스럽게 형에게로 흘러가던 풍경을 담담하게 나열한다. 이러한 태도는 박완서의 가족 수필에서 자주 보이는 거리 유지의 서술 방식과 닮아 있다. 박완서가 가족사를 다룰 때 감정을 정리된 문장 안에 눌러 담았던 방식이 이 작품에서도 반복된다.

또한 형의 대학 생활과 군 복무 그리고 연애 서사가 이어지며 화자의 위치는 점차 주변으로 이동한다. 과외 선생님과의 일화와 손금 이야기는 이 글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손금은 개인의 고유성을 상징하는 표식이며 동시에 자신만이 다르다고 느끼던 화자의 자의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특이함이 타인에게 발견되는 순간 화자는 당황을 경험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자아 독점 환상이 흔들리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자신만의 특징이라 여겼던 것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상대화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다. 거실에 모인 가족과 반복되는 손금 이야기 그리고 웃음 속에서 화자는 더 이상 해명하지 않는다. 과거라면 즉각 반응했을 상황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태도는 중요한 심리적 변화를 암시한다. 이는 방어적 반응에서 수용적 태도로의 이동이며 자기 서사를 타인의 기억과 함께 두는 선택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는 통합에 가까운 심리적 행동을 보여주며 이 작품의 질을 향상한다.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청준의 수필에서 종종 발견되는 깨달음의 순간과는 다르다. 이청준의 서사가 인식의 전환을 분명한 언어로 표명했다면 이 작품은 전환을 말하지 않고 장면으로만 남긴다. 최고의 장면이라는 제목 역시 특정 사건의 위대함을 가리키기보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는 이 작품에서 작가의 고백에 조용한 응원을 보낼 수 밖에 없다. 형제 관계라는 익숙한 소재를 통해 비교와 수용 그리고 거리 조절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절제된 문체와 과장 없는 회상이 어우러지며 삶의 어느 순간이 최고의 장면이 되는 조건을 조용히 제시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이 장면은 독자에게도 자신의 거실을 떠올리게 하며 오래 남는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디카시 부문>

심사평

김현희 시인의 <둥지 희망> <성찰>

<둥지 희망>

이 작품은 한겨울의 정적 속에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며 멈춤을 선택하는 태도를 ‘둥지 희망’이라는 역설적 제목으로 제시한다. 작가는 사진 속 나목(裸木) 상부에 걸려있는 둥지를 화자의 입장에서 나무에 오르는 주인공으로 언술하고 있다. 더 오를 수 있음에도 잎을 떨군 채 서 있으며, 그 모습은 시의 첫 행 “더 오를 수 있어 / 그렇지만 / 그만 오를래”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상승과 정지 사이의 긴장은 겨울이라는 계절성과 맞물려, 성장만을 강요하는 시간에 대한 조용한 저항으로 읽힌다.

시어는 담백하고 직설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가볍지 않다. ‘오르지 않음’을 포기가 아니라 선택으로 전환시키는 화자의 목소리는, 독자에게 쉼과 성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특히 “올라야 하는 이유를 / 남겨두고 싶어”라는 종결부는, 지금 당장의 성취보다 미래를 위한 여백을 택하겠다는 의지로 작품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는 둥지가 지닌 ‘가장 어두운 때가 곧 다시 밝아지는 출발점’이라는 상징과도 긴밀하게 호응한다.

사진과 시는 과잉 설명 없이 서로를 지탱하며, 디카시의 미덕인 절제와 여운을 잘 살려낸다. 다만 이미지 속 배경 요소들이 다소 산만하게 읽힐 수 있어, 시선이 나무의 중심 이미지에 더 집중되도록 구도를 포착했다면 정서의 응집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희망’을 상승이나 확장의 서사가 아닌, 멈춤과 유보의 선택으로 새롭게 해석하며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계절적 상징과 내면의 결단이 균형을 이루는, 사유 중심의 완성도 높은 디카시로 평가할 수 있다.

<성찰>

이 작품은 ‘높은 곳’과 ‘내려옴’이라는 대비를 통해 삶의 태도를 조용히 전환시키는 힘을 지닌 디카시다. 사진 속 녹색 계단은 위로 향한 구조이지만, 그 위에 놓인 낙엽 한 장은 이미 하강을 선택한 존재로 화면에 머문다. 이 시각적 장면은 시의 첫 행 “높은 곳에 오래 있었잖아”와 자연스럽게 호응하며, 성취와 긴장의 시간을 충분히 통과한 이후의 정서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시어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불필요한 설명 없이 “이제 / 내려와도 괜찮아”라는 짧은 문장은 자기 위안이자 자기 허락의 언어로 읽히며, 독자에게도 동일한 내면의 목소리를 환기한다. 이는 하강을 실패나 후퇴로 보지 않고, 성찰과 수용의 단계로 재해석하게 만드는 미덕을 지닌다. 특히 ‘괜찮아’라는 구어적 어조는 작품의 긴장을 풀어주며, 사진의 정적 분위기와 맞물려 잔잔한 공감을 형성한다.

계단의 반복적 구조와 녹색의 단색 조합은 시선의 과잉을 막고, 낙엽이라는 단서 하나에 집중하게 한다. 다만 화면의 여백이 비교적 단순한 만큼, 계단의 높이가 조금 더 드러났다면 ‘높은 곳’이라는 시적 개념이 시각적으로 더욱 강화될 여지도 있다.

이 작품은 오름의 시대를 지나 내려옴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 성찰의 태도를 과장 없이, 그러나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하며, 독자에게도 스스로의 속도와 위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디카시로 평가할 수 있다.

김현희 시인의 「둥지 희망」과 「성찰」 두 작품은 모두 ‘더 오를 수 있음에도 멈추거나 내려오는 선택’을 통해, 성장과 성취 중심의 서사를 성찰과 수용의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공통된 미학을 보여준다. 「둥지 희망」이 멈춤을 미래를 위한 유보와 희망의 전략으로 제시한다면, 「성찰」은 충분히 오른 이후 내려와도 괜찮다는 자기 허락의 태도를 통해 삶의 속도를 재조정한다. 두 작품은 사진과 시가 과잉 없이 긴밀하게 호응하며, 상승을 미덕으로만 여겨온 관성적 사고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디카시가 지닌 ‘순간 포착을 통한 사유의 확장’이라는 본령을 충실히 구현한 성취로, 절제된 언어와 상징의 균형 속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의미 있는 작품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심사위원 합평

심사평

황존규 시인의 <소금받기>〈무상을 만나다〉

<소금받기>

전통적 사물(소쿠리) , 민속적 행위(소금 받기) 어린시절의 기억,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회복의순간을 촘촘하게 복원해낸 작품이다. 사진 속 중첩된 소쿠리는 마음의 굴곡과 기억의 층위를 은유적으로 품고 있으며, 시인은 이 사물의 구조를 정서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몽환의 밤 지은 죄를 면하려 / 부끄럼 꽉 쓰고 앞집 문 두드리니”라는 첫 장면은 짧은 행간 속에 서사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어 “소금 한 줌 별처럼 쏟아져 / 쪼그라든 마음 펼쳤던 시간”은 감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전환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분이다. 소금이 가진 정화의 의미를 ‘별처럼’이라는 밝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전환함으로써, 치유의 순간이 섬광처럼 번지고 환하게 퍼지는 감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마지막 행에서 “그날 이후 아이의 잠자리는 젖지 않았다”는 서술은 사건의 물리적 결과를 넘어 마음의 치유와 신뢰의 회복을 고요하게 수렴한다.
이 작품은 유년시절 일상의 장면을 서정적,정서적 깊이로 끌어올리는 디카시 본연의 미학을 충실히 구현한 점에서 돋보인다.

〈무상을 만나다〉

동양적 사유의 핵심인 ‘무상(無常)’을 목판의 이미지와 언어적 성찰을 통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황존규 시인은 오래된 목재의 질감과 먹빛 글자의 묵직한 울림을 언어로 이어붙이며, 존재가 사라지고 흘러가는 과정을 정제된 어조로 포착한다.
“황혼의 빛이 흘러간다 /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라는 서두는 소멸의 미학을 절제된 문장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흘러간다’는 시간성, ‘이름 없음’은 무위의 상태로 확장되며,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짧은 행으로 압축한다.  “붙잡은 세월조차 저물어도”는 삶이 머물고자 할수록 더 빠르게 사라지는 역설을 드러내며, 독자를 사유의 심연으로 끌어당긴다. 특히 마지막 행 “비움과 채움은 다시 0과 1.”은 고전적 개념을 디지털 기호로 전환시키며 작품에 강렬한 현대성을 부여한다. 이는 무상을 단순히 과거의 철학적 개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현실의 존재 방식으로 새롭게 환기시킨 점이 특히 돋보인다. 디카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황존규 시인의 <소금받기>〈무상을 만나다〉두 작품은 전혀 다른 소재와 정서를 다루면서도, 공통적으로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존재의 본질로 도약하는 디카시의 미학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고 있다. 사물과 장면의 표면을 지나 그 너머의 의미를 포착해내는 시적 감수성과, 여백을 다루는 균형감을 지닌 창작자이다. 앞으로 시인의 작품 세계가 더욱 단단하고 깊이 있게 확장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미지와 언어가 함께 호흡하는 황존규 시인의 디카시 세계가 더욱 빛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소설 심사평> 

홍희자 소설가의「미로」 

홍희자 작가의 소설 <미로>는 성실하게 살아온 중년 여성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과정을 남편의 갑작스러운 실종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며 겪는 심리적 혼란을 '미로'라는 상징을 통해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요양병원에서 야간근무를 마친 간호사이자 간호팀장인 서영란의 지친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는 잠들기 위해 커피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습관을 반복하며, 삶이 무력한 반복으로 굳어져 가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 와중에 남편 이강훈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회사의 전화를 받으며 일상은 급격히 균열된다. 
평소 영업직으로 활달하고 인간관계가 넓으며 도박과 음주를 즐기던 남편은 연락 두절 상태로 사라지고, 영란은 회의 중에도 불안에 휩싸인 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안은 어수선하고, 함께 사는 시어머니는 걱정과 체면, 짜증이 뒤섞인 태도로 며느리를 압박한다. 영란은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집안을 정리하고 음식을 만들고, 남편의 컴퓨터와 흔적을 뒤지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는 영란의 감정을 자극하지만,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른다. 결국 남편의 절친 정용과 또 다른 친구가 집을 찾아오고, 그제야 남편이 여러 친구들에게 몰래 돈을 빌렸으며 심각한 금전 문제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드러난다. 시어머니는 충격 속에 방으로 물러나고, 영란은 남편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했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차량 도난 신고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영란은 출구 없는 혼란에 빠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과거 제주도 여행 중 아이가 미로에서 길을 잃고 울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의 자신이 바로 그 미로 속에 갇힌 존재임을 자각한다. 

 총  평 

이 작품은 ‘사라진 남편’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맞닥뜨린 한 여성의 내면 붕괴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특히 '성실한 남편'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의 허탈함을 '미로'라는 폐쇄적인 공간감으로 연결한 점이 인상적이다.  
문장이 안정적이고 생활감이 살아있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힘이 크며, 특히 감각적인 묘사와 심리 표현이 뛰어나다고 보여지는데, 소설의 도입부에서 '커피에 소주를 타 마시는 행위'는 주인공의 피로와 자괴감을 시각적, 미각적으로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파괴(알코올 섭취)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독자의 몰입을 강하게 끌어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극적인 반전이나 사건 해결을 서두르지 않고, 오히려 해결되지 않는 상태를 끝까지 유지함으로써 삶의 불확실성과 감정의 미로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남편의 실종 이후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 다소 대화(남편 친구들의 폭로)에 치중된 느낌이 있다. 주인공이 남편의 소지품이나 서류 등을 통해 스스로 단서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한두 단계 더 넣었다면 추리적인 긴장감이 높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

홍희자 작가의 건승을 기대하며 더욱 좋은 작품으로 훌륭한 소설가로 대성해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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