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문학고을 계간지 상반기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당선 심사평 제 82회 2차 공모
(엘리트 문단의 산실/ 등단의 길잡이)
<시 부문>
김홍겸 시인의 <노릿푸른> <치매 요양 병원>
자연과 현실을 매개로 한 존재의 사유
김홍겸 시인의 <노릿푸른>은 봄을 계절적 순환으로 바라보지 않고, 존재가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의지적인 작품이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 다시 피어나기로 한 결심이다”라는 구절은 계절을 내면에서 길어 올린 의지의 은유로 전환한다. 이때 봄은 자연 현상을 넘어 존재의 태도로 확장된다. 또한 아직 피지 않은 꽃이 마음을 먼저 물들인다는 시어 또한 인상적이다. 이는 김춘수의 존재론적 사유를 떠올리게 하듯 사물이 완전히 드러나기 이전의 떨림과 가능성의 순간에 주목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현실에 앞서 감응이 먼저 도달하는 그 미묘한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시는 생성의 기미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또한 대화 형식의 도입은 독백과 타자의 음성을 교차시키며, 봄을 매개로 존재 내부의 두근거림과 자립의 의지를 부각한다. 시인은 이렇게 이 시에서 봄은 자연의 배경을 넘어 실존적 재생의 은유임을 보여준다. 김홍겸 시인은 자연의 이미지를 빌리되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삶을 다시 긍정하려는 존재의 움직임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봄을 하나의 철학적 사건으로 완성한다.
<치매 요양 병원>은 치매라는 현실적 상황을 다루면서도 단순한 연민이나 사회적 비판에 머물지 않고 정상성의 기준을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사유시의 성격을 띤다. 요양 병원이라는 공간은 보호와 격리의 경계에 놓여 있으며, 그 안에서 벌어진 ‘탈출’ 사건은 언어의 명명 방식이 세계를 규정하는 힘을 드러낸다. 특히 “탈출”이라는 단어에 대한 시인의 집요한 응시는 이 시의 핵심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병원과 마을은 ‘탈출’이라 부르지만, 화자는 그것이 외출이거나 자유일 가능성을 상정한다. 이는 푸코가 말한 규범과 정상성의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규정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과도 맞닿는다. 치매 환자는 하나의 시간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관점은 병리적 상태를 결핍이 아닌 다른 방식의 시간 경험으로 재해석한다. 이 작품은 사실적 서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존재와 자유의 의미를 재정의하려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치매를 단순한 상실을 넘어선 다른 시간의 거주 방식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응시가 매우 밀도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김춘희 시인의 <가을의 목울대> <비는 혼자 내리지 않는다>
소멸의 정리와 관계의 회복
김춘희 시인의 <가을이 목울대>는 가을을 단순한 계절적 배경으로 다루지 않고, 목울대라는 신체적 표상을 통해 계절을 발화의 기관으로 형상화한다. 목울대는 소리가 통과하는 자리이며, 삼킴과 울음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부위다. “가을의 목울대가 쉬었다”는 첫 시어의 의인화는 계절을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하는 시적 전략을 보여준다. 날벌레들이 “마지막 무희처럼 혼신을 다해 어둠을 사른다”는 표현은 소멸 직전의 생명력이 오히려 더 강렬해지는 역설을 드러낸다. 이는 박목월의 자연 서정이 보여주는 평화로운 계절감과는 다르게 쇠잔의 미학에 가까운 정서를 띄며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 노년의 풀, 키가 낮아진 강물 등은 모두 ‘낮아짐’과 ‘눕힘’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이 시에서 가을은 수직의 힘을 잃고 점점 수평으로 기울어가는 세계다. 화자는 “가을을 차곡차곡 접어서 / 떠나가는 낙엽의 호주머니에 / 슬며시 넣어준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렇게 계절을 정리하고 봉합하는 행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떠나는 것에게 다시 맡기는 역설적 태도를 보이며 소멸을 비극으로 과장하지 않고, 조용한 정리의 몸짓으로 완결한다는 점에서 절제된 만가적 성격을 보여준다.
<비는 혼자 내리지 않는다>에서는 비라는 자연 현상을 관계의 문제로 확장한다. 제목에서 이미 단정적으로 제시되듯 비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비는 공기, 흙, 길, 인간의 손과 맞물려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밤새 앓던 먹구름의 서러운 투정”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인은 하늘을 하나의 감정적 주체로 전환한다. 그러나 이 감정은 과장된 비탄이 아니다. 눅눅하고 시큼한 현실의 감각으로 구체화 되며, 시의 정서를 풍성하게 한다. 이 시에서의 결정적인 전환은 “꿈틀대는 비의 심장에 / 온기를 건네주면”이라는 구절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인간은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등장한다. 두 손을 내미는 행위를 통해 맞이하는 그 순간의 비는 더 이상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이 작품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에 두지 않고 관계의 확장 속에서 재해석한다. 비는 내리는 것의 행위를 넘어서 함께 겪고 건네는 사건이 된다. 시인은 비를 통해 서로 기대고 감응하는 존재를 환기한다. 특히 김춘희 시인의 시어는 매우 감각적이고 오랜 퇴고의 층이 보여서 읽는 내내 즐거움을 자아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김정규 시인의 <소외> <새>
다의적 표현과 상징의 힘
김정규 시인의 <소외>는 는 디지털 환경 속 관계의 과잉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고독을 심화시키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수십만 가지 LED 불빛”, “수만 개의 숫자 / 수백 개의 이름”이라는 반복적 과장은 현대 사회의 연결망을 시각적이고 수량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빛은 본래 어둠을 밝히는 매개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인연을 ‘묻어두는’ 장치로 기능한다. LED의 인공적 광휘는 달빛이라는 자연의 빛과 대비되며, 관계의 실체가 아닌 표면적 연결을 상징한다. “연락할 인연의 뭉치 속에서 / 손끝은 /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라는 시어는 이 시의 정서적 핵심이다. 물리적으로는 접촉 가능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닿지 못하는 상태를 매우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는 이 시어를 통해 김정규 시인의 깊은 사유가 빛을 발한다. 이 시에서 달빛은 질문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침묵이 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고독을 감정의 호소로 표현하지 않고 수치와 빛의 이미지로 구조화함으로써 현대적 소외의 양상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새>는 불안정한 자아의 투사로 읽힌다. “커다란 날개깃에 / 비틀거리는 / 창공의 새 한 마리”라는 시어는 상승과 추락의 긴장을 동시에 품는다. 창공은 자유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새는 이미 비틀거린다. 이는 자유가 곧 안정은 아니라는 역설을 드러낸다. “추억에 취한 듯 헤매며”라는 표현은 비행의 원인을 외부 조건이 아닌 내부의 기억으로 돌린다. 날개를 움직이는 힘이 과거의 정서라면 비행은 전진이 아니라 방황에 가까워진다. 특히“깃 빠지는 날개”는 자연의 거센 힘과 존재의 취약함을 대비시키며 주제를 강조하는 시인은 “내 파랑새는 지금 / 위태롭게 날고 있다”라는 구절을 통해 주제에 상징적으로 다가간다. 시인의 날카로운 시어들과 역설의 미학은 매우 현대적이며 아름다운 감각을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김주원 시인의 <숨> <결>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깊은 시선
김주원 시인의 <숨>은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존재의 전환 가능성을 사유한다. “서면 땅이지만 / 걸으면 길이 된다”라는 시작은 사물의 본질이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행위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적 상태임을 드러낸다. 땅과 길의 차이는 물리적 차이를 넘어선 주체의 움직임이 개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처럼 시는 존재를 명사가 아닌 동사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이어지는 연들 역시 동일한 문법 구조를 반복한다. “꺼지면 재 / 지키면 숯”, “쌓이면 짐 / 나누면 덕”과 같은 대구는 행위에 따른 존재의 다름을 강조한다. 동일한 대상이라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행위 중심의 존재론을 제시한다. 특히 “쓰면 글이지만 / 담으면 사상이 된다”라는 구절은 표현과 내면화의 차이를 구분한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유로 축적될 때 비로소 사상이 된다는 인식은 언어를 도구가 아닌 축적된 숨의 흔적으로 본다. 이렇게 김주원 시인은 반복과 대비의 구조를 통해 존재를 실천적 움직임으로 재정의한다.
<결>은 ‘순수’라는 개념을 도덕적 무결성이나 단순성으로 환원하지 않고 오히려 복합적 경험을 통과한 내면의 질감으로 재규정한다. 시에서“순수하지 못한”이라는 시어는 부정의 형식을 취하지만, 실상은 순수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탐색하는 장치다. 냄새, 눈동자, 혀, 발끝, 옷 등 신체와 사물의 감각적 표상은 순수를 감각의 차원에서 문제화한다. 특히“순수하지 못한 옷은 말끔하다”라는 구절은 인상적이다. 얼룩 없는 옷이 오히려 삶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순수는 무결이 아님을 암시한다. 또한 시인은 상반된 정서의 병치를 통해 인간 내면의 복합성을 드러낸다. 순수는 단일 감정의 유지가 아니다. 바로 상충하는 감정들을 함께 견디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이는 도덕적 완전성보다는 실존적 통과의 과정을 중시하는 관점이다. ‘결’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과 압력을 견딘 흔적이다. 특히 이 시에서 깊은 사유를 보여주고 있는 김주원 시인은 반복적 문장 구조를 논증처럼 전개하며, 독자를 개념적 사유의 장으로 이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방예자 시인의 <아버지의 마당> <수직의 잠>
부재와 단절을 통과한 인식
방예자 시인의 <아버지의 마당>은 개인적 애도의 정서를 부재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을 통해 회고하는 깊은 서정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의 공간은 ‘산 밑의 낡은 집’과 ‘마당’이라는 구체적 장소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 장소는 기억과 가치가 응축된 정신적 지형으로서 시에 존재한다. 또한 헛기침 소리, 빗자루 소리와 같은 청각적 기억은 부재를 더욱 또렷하게 부각한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이다. 장독대와 가죽나무가 자라나는 동안에도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다”라는 시어는 시간의 일방성을 강조한다. 자연은 자라지만 인간은 돌아오지 않는 현실의 침묵이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 그렇게 화자는 자신의 머리 위에 내린 서리를 언급하며 세대의 이동을 암시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자식이 어느덧 그 나이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를 통해 “당신이 닦아놓은 마당 위에 서 본다”라는 시어가 탄생하며, 마당의 상징성이 완성된다. 그것은 바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긴 삶의 자리이다. 방예자 시인은 이런 마당의 상징성에 전통과 계승의 의미를 조용히 복원한다.
<수직의 잠>은 수평의 일상에서 벗어나 수직의 고독을 지향하는 존재의 의식을 그린다. “초승달마저 눈을 감은 밤”, “숲의 뼈를 씻어낸 바람”이라는 표현은 매우섬세하고 감각적이다. 숲은 피부가 아니라 뼈를 가진 존재로 묘사되며, 그 깊숙한 곳까지 바람이 스며드는 서정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자연을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구조와 내밀함을 지닌 유기체로 전환하는 시인의 시어가 매우 눈에 띈다. 또한 “세상에 닿지 않는 꼭대기가 좋았다 / 세상과 닿지 않을 이유가 있었다”라는 고백은 이 시의 철학적 중심이다. 이를 통해 수직은 상승의 이미지이면서 닿지 않을 이유이다. 이 시에서의 수직은 고도(高度)가 아니라 심도(深度)에 가깝다. 시인은 자연을 배경으로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아의 깊이를 탐색하는 명상적 서정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시 세계를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조명희 시인의 <달리지 못한 운동화> <소리로 걷는 시간>
관찰력, 새로운 시각과 역설
조명희 시인의 <달리지 못한 운동화>라는 이 작품은 ‘닳음’이라는 일상적 현상을 존재론적 질문으로 전환한다. 세월은 화자를 “허물며 관통”하지만, 신발장 속 운동화는 “지독하게도 견고하다.”라는 시어로 표현한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과 사물의 정지가 날카롭게 대비되며, 여기서 견고함은 긍정이 아니라 아이러니가 된다. 닳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용되지 않았음을 뜻하고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살아내지 못한 시간을 암시한다. 화자의 운동화는 “처음 산 날의 무늬를 문신처럼 움켜쥐고 있다.”라며 가능성으로만 남은 시간의 고착을 보여준다. “한 번도 흙의 체온을 안아보지 못한 / 지나치게 깨끗한 절망”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정서를 집약한다. 깨끗함은 미덕이 아니라 결핍이다. 흙의 체온, 즉 세계와의 접촉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는 무균의 고립과 같다. 조명희 시인은 이렇게 이 작품을 통해 삶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닳지 못한 생의 무게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닳아간다는 것은 줄어드는 것을 넘어선 세계에 자신을 남기는 일이라는 역설이 깊게 울리는 작품이다.
<소리로 걷는 시간>은 신체 감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존재 방식을 모색한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낯선 파동”이 몰려오는 장면에서 세계는 시각이 아닌 청각의 형태로 다가온다. 화자는 더 이상 공간을 눈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대신 “소리들을 수집해 지도를 그리는 예민한 좌표”가 된다. 신체는 감각의 재배치를 통해 다른 방식의 이동을 시작한다. 이는 상실이 새로운 감각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곳을 “파동을 짚고 걷는다”라는 표현은 물리적 이동을 넘어선 감각의 영역이다. 재활실의 마찰음과 신음은 고통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신호다. “정지된 근육의 벽을 두드려 / 잠들어 있던 회로를 깨운다”는 구절은 신체를 하나의 전기적 장치처럼 묘사한다. 이는 생명이 미세한 전류처럼 흐르며 되살아나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시인은“가장 나직하고도 뜨거운, 내 생애 첫 보폭”을 통해 존재론적 출발을 하고 있다. 이 시는 상실 이후의 시간을 결핍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각의 재구성을 통해 또 다른 걷기를 발견한다. 조명희 시인의 세계와 다시 연결되려는 의지, 그것의 파동을 이 작품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승근 시인의 <열정> <첫눈>
내면의 형상화와 탁월한 시의 구성
이승근 시인의 <열정>은 열정을 외부의 성취나 사회적 성공의 동력으로 다루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꺼지지 않는 생의 불씨로 형상화한다. “소멸되지 않는 난로의 불꽃”이라는 비유는 열정을 지속의 에너지로 제시한다. 난로는 외부를 태우기보다 내부를 데우는 장치다. 이 점에서 시의 열정은 과시적 에너지가 아니다. 바로 스스로를 지탱하는 온기에 가깝다. 또한“오므라드는 나를 / 다시 살게 하는 그”라는 시어는 열정을 재생의 조건으로 규정한다. 오므라듦은 위축과 체념의 상태이지만, 그 안에서 다시 숨 쉬게 하는 힘이 바로 열정이다.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선택의 차원과도 맞닿는다. 인간은 상황에 의해 규정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열정은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의지다. 이승근 시인은 평범한 개인의 일상 속에서 지속되는 생의 의지를 말한다. 또한 소시민이라는 자기 규정은 겸허하지만, 동시에 단단하다. 시인은 열정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살아내려는 모든 존재의 숨결이라는 점을 이 시는 조용히 강조한다.
<첫눈>은 첫눈을 정화와 치유의 상징으로 호출함과 동시에 그 순수의 한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새까만 도시를 표백하는 / 첫눈”이라는 표현은 눈을 정화의 힘으로 제시한다. 도시의 어둠과 대비되는 흰 눈은 잠시 세계를 다른 색으로 덮는다. 그러나 “찬 바람에 표류한다”라는 시어를 통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안을 깊게 하는 서정을 보여주며, “깊은 상처에 쌓여다오 / 새살이 돋아날 수 있게”라는 화자의 요청은 눈을 치유의 매개로 격상한다. 상처 위에 내려앉는 눈은 고통을 덮고 새로운 살이 돋게 하는 보호막처럼 보인다. 하지만 곧 “육각의 오염된 수정”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분위기가 반전된다. 눈은 더 이상 완전한 순수가 아니다. 이미 “온 세상에 동화 되어버린” 상태인 세계의 오염과 뒤섞인 채 내려오는 존재다. 이렇게 이승근 시인은 눈의 이미지를 여러 번 바꾸며 다양한 눈을 한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면 장면을 보여준다. 시인의 감각적인 구성력을 바탕으로 이 시의 서정은 매섭게 살아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정은 시인의 <진주 목걸이> <향수>
사물과 자아의 동일시와 서사
이정은 시인의 <진주 목걸이>는 진주 목걸이라는 사물을 통해 삶의 시간을 시각화하는 작품이다. “송이 송이 알알이 반짝이는 내 추억”은 진주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선 기억의 저장소로 보여준다. 각각의 진주알은 지나간 한 시절, 한 장면, 한 감정의 결정체다. 바다 속에서 오랜 시간 응결되어 만들어지는 진주의 속성이 세월이 겹겹이 쌓여 형성되는 인간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그러나 단지 단순히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바로 주체의 선택과 해석을 통해 하나의 서사가 된다는 점을 시에서는 시어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또한 “사랑스러운 진주 목걸이는 나다. 내가 진주다.”라는 반복은 사물과 자아의 동일시를 통해 시의 정서를 응축한다. 목걸이를 ‘지니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되는 이 이중적 구조는 삶과 기억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진주를 소유하며 세월 속에서 스스로가 하나의 진주로 빚어졌음을 자각한다. 이정은 시인의 이러한 이중적 구조를 하나의 철학으로 묶어 낸 점이 매우 훌륭했던 작품이다.
<향수>는 후각이라는 감각을 매개로 한 작품이다. 여기서 향수는 단순한 냄새를 넘어선 기억을 호출하는 장치다. “코를 자극하는 향기 / 잠시 옛 생각에 빠지게 한다”는 구절은 감각이 곧 기억의 문이 됨을 보여준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의 향과 맛을 통해 과거를 소환했듯 이 시에서도 향기는 시간을 되돌리는 매개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향수는 서로 다른 인생의 단계와 대응된다. 향의 농도와 온도가 곧 자아의 변모를 상징하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 향수는 기호품을 넘어선 정체성의 변화와 성장의 징표다. 특히 “순한 비누 향처럼 / 잘 살았고, 잘 지냈다고”라는 시어를 통해 시인은 정서를 담담히 드러내며 주제를 부각한다. 시인의 향수는 기억을 현재 속에서 새롭게 구성한다. 이정은 시인은 이렇게 향기를 통해 자아의 변천사를 서정적으로 펼쳐 보이며, 청각적 감각으로 흥미를 이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오세진 시인의 <대치(對峙)의 토요일> < 나의 계절>
세대적 자화상의 확장과 상상력
오세진 시인의 <대치(對峙)의 토요일>은 공간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이미 하나의 사회적 긴장을 보여준다. ‘대치’라는 지명은 동시에 ‘대치(對峙)’라는 단어와 겹치며, 교육 현실과 개인의 내면이 서로 마주 선 상황을 암시한다. “도심이 시계를 끈 토요일 아침 / 대치동의 초침은 휴식을 잊었다”라는 시어를 통해 이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모두가 쉬는 시간에도 이곳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토요일조차 유예되지 않는 경쟁의 리듬이 도시의 심장처럼 박동한다. “콘크리트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 바쁜 걸음들”은 학원가의 풍경을 집약하는 이미지다. 건물은 입이 되고, 아이들은 삼켜진다. 개인의 발걸음은 의지를 지닌 선택이라기보다 구조 속으로 흡수되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세진 시인은 풍경으로만 두지 않고 “그 시절 나의 어깨도 / 저토록 작았을까”라고 묻는다.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풍경이 겹쳐지며,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세대적 자화상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확장성과 짙은 내면화는 주제를 강조하고 이것이 오세진 시인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저력이다.
< 나의 계절>은 겨울이라는 계절을 내면의 정지 상태로 끌어들인다. 특히 독특했던 부분은 시의 시선이 유리창을 매개로 전환되는 부분이다. 또한 “타인의 계절을 담는 시간”이라는 표현은 창이 단절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관조의 장치임을 보여주며 시인의 깊은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유리 벽을 두드리는 바람은 외부의 계절을 알리지만, 내부는 여전히 “푸르른 적막”에 잠겨 있다. 이 푸름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생의 색조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시에서 정서 전환은 “가느다란 황금빛 실타래 하나”에서 이루어진다. 창틀 틈으로 들어온 빛은 단순한 햇살을 넘어선 “1억5천만 킬로미터”를 건너온 태양의 거리까지 명시되며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된다. 이 수치는 빛의 도달을 과학적 사실로 환기하며, 동시에 존재를 향한 우주의 안부처럼 읽히게 한다. “내가 가고 있어”라는 의인화된 목소리는 빛을 생명의 메시지로 전환한다. 이러한 시인의 사유의 확장성이 매우 신선하고 놀라움을 자아낸다.이렇게 이 시는 거창한 사건 없이도 한 줄기 빛이 어떻게 계절을 바꾸는지 보여주는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오세진 시인의 <숲속에 찾아온 너에게> <수도꼭지>
따뜻한 위로와 진심 어린 언어
오세진 시인의 <숲속에 찾아온 너에게>는 ‘너’에게 건네는 긴 위로의 편지이며, 상처를 통과해 온 존재를 다독이는 치유의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숲은 단순한 자연 공간을 넘어선 고통과 성장의 통로로 제시된다. “몽글한 흙바닥을 꾹 밟아줘”라는 당부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라는 요청이며, 발자국은 지나감의 표식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음의 증거다. 특히 눈물과 장작, 연기 이미지가 교차하며 정서의 밀도가 높아진다. 여기서 시인이 바라보는 매개체의 상징이 매우 눈에 띈다. 눈물은 “목을 축일” 수 있게 하는 매개이며, 고통은 소모가 아니라 순환의 일부다. 이러한 시선으로 끝나지 않고 시인은 고통의 지속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별을 따다 머리맡에 두는 장면은 동화적 상상력까지 돋보인다. 시인은 성장의 서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멈추고” 쉬어도 된다고 말한다. 다정한 시인의 위로가 매우 따뜻하다.
<수도꼭지>는 물방울이라는 존재를 통해 생의 투쟁과 꿈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보이는 자유롭게 날아간 방울과 소매에 묻혀 옴짝달싹 못 하는 방울의 대비는 매우 신선하다. 같은 물이었지만,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 이 물을 보여주며 새로운 감각을 환기한다. 또한 이어지는 “깨진 유리병”과 “도깨비의 초록색 혀”는 <숲속에 찾아온 너에게>처럼 환상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화자가 보는 물방울에 대한 관찰력은 매우 예리하다. 물방울은 유리 절벽에 매달린 채 한순간을 버틴다. 이 장면은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찰나의 치열함을 강조한다. 또한 시인은“엄마의 슬픔을 덜어낼 눈물 한 방울”, “아빠의 공허함을 채워줄 파도 거품 한 방울”이라는 구절은 물을 감정의 매개로 확장한다. 물방울의 걸음은 느리다. 그 느림은 좌절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지독하게 느린 걸음 속에서도 꿈은 사라지지 않는 시인의 위로가 매우 아름답게 펼쳐진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수필 부문>
김주원 수필가의 <겨울의 발자국>
관찰의 힘을 통한 날카로운 사유
수필 <겨울의 발자국>은 자연 관찰을 통해 창작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사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글은 수달이라는 구체적 대상의 부재를 중심에 두고 기다림과 관찰 그리고 글쓰기의 내적 리듬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자연 서사로 출발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창작 행위 그 자체에 놓이며 관찰 수필과 메타 수필의 경계 지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사실 확인보다 흔적을 신뢰하는 작가의 태도다. 화자는 수달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다. 대신 눈 위에 남은 발자국과 흐름이 다른 물살 그리고 은신처로 추정되는 지형을 통해 존재를 확신한다. 이는 백석의 자연 시편에서 보이는 간접 인식의 방식과 닮아있다. 대상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세계는 충분히 실재한다는 감각이 텍스트 전반을 지탱한다.
발자국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인식 장치다. 발자국은 과거의 움직임이 현재에 남긴 흔적이며 이는 기억과 기록의 메커니즘을 환기한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대상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표상의 작동과 유사하다. 화자는 부재를 결핍으로 인식하지 않고 사유를 촉발하는 조건으로 전환한다. 이 전환은 강요된 긍정이 아닌 관찰의 축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또한 김주원 작가는 하루 두 시간만 허용되는 놀이의 시간을 통해 자기 조절 능력이 작동하는 지점을 보여주며, 이는 창작자가 외부 자극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설정한 심리적 경계로 볼 수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 경험은 이 글에서 자연과 글쓰기 사이를 오가는 반복 구조 속에서 구현된다. 자연을 놀이로 인식하는 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김훈의 자연 수필에서 보이는 긴장과 대비된다. 김훈의 문장이 자연을 극복하거나 통과해야 할 대상으로 다룬다면 이 작품은 자연을 관찰자의 속도를 조율하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수달을 기다리는 시간은 생산을 지연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사유를 숙성시키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또한 자연 속 놀이는 글의 자궁이라는 작가의 글은 창작 행위를 생물학적 생성 과정에 비유하며 창작자가 세계와 맺는 관계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작가의 아포리즘을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이렇게 외향과 내향이 교차하는 리듬을 형성하며 창작이 단절된 사건을 넘어선 생활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글은 목적물이 아니라 자연의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되며 수필의 성찰은 여기서 가장 깊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관찰과 기다림을 통해 창작 주체의 형성을 보여주는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대상의 부재를 결핍으로 환원하지 않고 흔적과 시간의 축적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 또한 작가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박계업 수필가의 <아버지는 사냥개였다>
감정의 언어로 환원하지 않는 감각적인 생동감
박계업 수필가의 <아버지는 사냥개였다>는 이 글은 가족 서사의 차원에서 출발하지만, 곧 개인의 회고를 벗어나 한 시대가 남긴 신체의 기록으로 이동한다. 작가는 아버지를 추억의 대상으로 묻어두지 않는다. 대신 달리는 몸과 숨이 끊어질 듯한 폐의 압력과 눈밭에 파묻히는 얼굴의 감각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생생하게 표현한다. 김훈의 산문이 노동과 전쟁을 직선적인 문장으로 밀어 붙이며 세계의 골격을 드러낸다면 이 글은 골격보다 먼저 반응하는 삶의 호흡을 따라간다. 문장은 설명을 서두르지 않고 달리기와 멈춤과 엎드림의 반복 속에서 리듬을 얻는다. 아버지는 인물로 형상화되기보다 움직임의 연쇄로 존재한다.
사냥개라는 비유는 무척 눈에 띈다. 그것은 아버지가 선택한 정체성이 아니라 시대에 의해 주입된 역할이며 스스로를 타자의 위치에서 인식하도록 강요받은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많은 독자로들로 하여금 정서를 환기한다. 이 지점에서 텍스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동일시의 메커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억압의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체는 가해 구조의 일부를 자기 안으로 끌어들인다. 사냥개라는 명명은 모욕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생존의 기술이다. 아버지는 그 언어를 거부하지 않고 몸으로 수행함으로써 하루를 연장한다.
이 글의 중요한 성취는 작가가 고난을 감정의 언어로 환원하지 않는 데 있다. 가난과 수탈은 작가의 판단이나 감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신 눈에 젖은 짚신과 얼어붙은 홑옷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방식은 고통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감각의 밀도로 남겨 두려는 태도와 닿아 있다. 독자는 연민을 강요받지 않는다. 다만 문장이 만들어 내는 감각의 압력 속에서 스스로 반응하게 된다. 이 점이 박계업 수필가의 대단한 필력을 반증하는 증거이다.
또한 거대한 사건이 개인의 삶에 스며드는 실제 경로를 정확히 포착한다. 역사란 지나간 사실의 총합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생존의 조건이라는 인식이 문장 전반을 지배한다. 아버지의 삶은 개인의 비극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그는 상징적 인물도 영웅도 아니다. 다만 달려야 했고 달릴 수밖에 없었던 몸이다. 이 몸은 기록되지 않은 다수의 몸을 대표하며 작가는 그 대표성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체적인 감각을 보편성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만든다. 이는 서사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기보다 흔적을 축적하는 전략이다.
작가는 아버지를 기리는 글이기보다 아버지를 통해 시대가 한 인간에게 요구했던 역할을 해부하는 기록이다. 기억은 미화되지 않고 상처는 봉합되지 않는다. 다만 달려온 발자국이 눈 위에 남듯 문장은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자리한다. 독자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한 개인의 생을 읽는 동시에 이 나라의 시간을 다시 밟게 된다. 이 글이 오래 남는 이유는 감동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문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등단작으로서 요구되는 완성도와 문제의식과 문장력을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박미순 수필가의 <고운 고추장>
이미지를 통한 상징적 장치와 설득력 있는 문장력
작품은 돌봄과 이별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접근 방식은 감정의 고조나 희생의 미화에 기대지 않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오히려 화자는 끝까지 자신이 내린 선택의 무게를 언어 위에 그대로 올려놓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정당화되기 쉬운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의심한다. 이 태도는 이 작품을 단순한 가족 서사나 간병 수기로부터 분명히 구분 짓는다. 이 점이 박미순 수필가의 문장력이다.
특히 작품의 중심에는 ‘고운 고추장’이라는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이미지가 놓여 있다. 이 이미지는 음식이라는 일상을 넘어선 어머니의 시간 감각과 생의 태도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말기 진단을 앞둔 상황에서도 내년의 고추장을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미 몸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하는 역할의 언어로 읽히며,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러나 화자는 이 장면을 감상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먹먹함은 작가의 감정이 아니라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점이 매우 훌륭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화자와 ‘딸’로서의 화자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구조다. 화자는 자신의 호통과 조급함을 변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며, 아끼는 마음이 언제나 다정하게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사의 한가운데에 놓는다. 이 부분 또한 박미순 수필가의 독자들과의 대화를 언어화하는 노련함이 엿보인다.
요양원 선택과 항암 중단의 서사는 특히 조심스럽게 다뤄진다. 화자는 이 결정이 온전히 어머니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인정하며, 자신의 안락함이 개입되었음을 또한 숨기지 않는다. 여기에는 효와 헌신을 둘러싼 도덕적 언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화자는 ‘모진 딸’이 되기를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그 선택을 영웅화하지도, 자기 연민으로 덮지도 않는다. 이 절제된 태도가 작품의 신뢰도를 높인다.
돌봄을 ‘관리’가 아닌 ‘곁을 내어주는 일’로 재정의하는 장면은 작가의 깊은 사유와 고민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화자는 마침내 설명을 멈춘다. 이해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순간, 서사는 과잉의 감정을 덜어내고 조용히 닫힌다. 문장 차원에서 볼 때에 작품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며 과장된 수사를 피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더 많은 감정을 공유하게 될 수 있고 설득된다.
이 작품은 개인적 체험을 도덕적 주장으로 환원하지 않고, 끝까지 서사의 긴장 안에 붙들어 두는 데 성공한 산문이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을 앞세우지 않는 태도, 선택을 기록하면서도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는 등단작으로서 충분한 문학적 자질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독자 각자의 기억과 선택을 조용히 불러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점에서 이 글은 이미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수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안기용 수필가의 <그냥, 그리고 굳이>
내면의 서사와 그 사유의 여백
안기용 수필가의 <그냥, 그리고 굳이>는 ‘그냥’과 ‘굳이’라는 일상어를 사유의 축으로 삶의 태도와 감정 조절의 문제를 정제된 언어로 탐색한 산문이다.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환 없이도 화자는 하루의 감각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흔들림을 꾸준히 관찰하며 자신의 내면을 서사화한다. 이 글의 가장 큰 강점은 삶을 해석하려는 조급함을 스스로 경계하는 태도에 있다.
작품은 선택과 속도라는 대비를 중심에 두고 시작한다. 이는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보편적 조건이지만, 화자는 이를 사회적 진단이나 세대론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하루를 살아내는 개인의 감각으로 문제를 끌어당긴다.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과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 사이를 오가는 마음의 움직임은 설명되지 않고 관찰된다. 이 거리감이 글의 톤을 차분하게 유지하며, 독자에게 사유의 여백을 남긴다.
관계에 대한 문장에서도 화자는 감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태도는 흔히 회피로 규정되기 쉽지만, 이 글에서는 ‘나를 지키는 작은 균형’으로 다시 명명된다. 이 재명명은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로 흐르지 않고, 감정의 작동 방식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특히 침묵과 웃음 같은 사회적 제스처를 내면의 파동과 병치하는 방식은, 외적 행동과 내적 감각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또한‘불수의근처럼 살아가는 삶의 감각’이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핵심 개념이다. 삶을 의지와 결단의 연속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호흡과 온도처럼 조절되기보다는 반응하는 영역으로 인식하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이는 삶을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서려는 화자의 내적 결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매우 훌륭했던 부분은 점점 결론을 향해 수렴되지만, 명확한 주장이나 교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늘을 설명하지 않고 내일을 설계하지 않는 용기를 말하면서도, 그 선택을 미화하지 않는다. 여전히 남아 있는 불편함과 망설임을 함께 껴안는 태도는 삶을 단정적으로 규정하지 않겠다는 안기용 수필가의 사유가 엿보였다. 이로써 작품은 독자에게 어떤 삶의 방식이 옳다고 말하기보다 각자의 속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작가의 안정적인 문체가 특히 좋았다. 이 작품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면 성찰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허구적 장치나 극적 서사를 동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교훈을 앞세우지 않고 사유의 과정을 열어 두는 점에서 작가의 ‘사유의 태도’를 보여주는 데 강점이 있는 작품이다.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이 이미 충분히 단단하며, 감정을 관리하거나 정리하려 들지 않는 태도 또한 성숙하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오영주 수필가의 <깍두기의 꿈>
과잉 없는 성찰과 솔직한 서사
<깍뚜기의 꿈>은 가족 서사라는 익숙한 토대를 활용하면서도, ‘둘째’라는 위치성을 하나의 존재론적 은유로 끌어올린 점에서 눈에 띄는 수필이다. 이 작품에서 ‘깍두기’는 단순한 어린 시절의 놀이 규칙을 넘어선 선택되지 않는 자리, 책임은 지되 권리는 유예되는 위치, 그리고 가족 내부의 보이지 않는 위계 질서를 상징하는 핵심 이미지로 기능한다. 작가는 이 은유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밀도 있게 나가며 자신의 성장 과정을 감정 과잉 없이 정리해 내는 부분이 매우 고무적인 작품이다.
이 글의 가장 큰 성취는 피해의식이나 감정적 호소에 기대지 않고 구조를 먼저 드러낸다는 점이다. 언니의 재능과 기대, 남동생의 늦둥이 서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괜찮은 아이’가 되어버린 화자의 위치는 설명되지 않고 배열된다. 독자는 화자의 분노나 슬픔을 직접적으로 강요받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상황과 선택의 배제 속에서 화자가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을 접어 왔는지를 서서히 감각하게 된다. 이는 수필이 지녀야 할 거리 조절에 대한 힘을 작가가 안정적으로 완성했다는 반증이 된다.
특히 “돈이 필요해도 필요 없는 아이여야 했다”라는 문장은 이 작품의 정서적 중심축이라 할 만하다. 이 문장은 가족 내 경제 논리가 어떻게 아이의 욕망과 말하기를 억압하는지 정확히 포착한다. 이어지는 ‘후식처럼 따라오는 엄마의 욕 섞인 푸념’이라는 표현 역시 생활 언어의 감각을 잘 살린 문장으로 감정의 폭력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잔여감을 선명하게 남긴다.
무용에 대한 꿈이 좌절된 이유 역시 개인의 포기가 아니다. 가족의 자원 배분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삭제된 결과로 제시된다. 이 지점에서 글은 개인의 실패담을 넘어, 가족이라는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묵묵히 드러낸다.
그 결과가 과거에 말하지 못했던 욕망이 현재의 감탄과 질투,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재현되며, 화자의 내면이 단순히 ‘극복’의 단계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이 솔직함은 이 글을 자기 미화나 도덕적 결론으로부터 지켜내는 중요한 미덕이다. 이러한 부분은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수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감정을 인정하는 부분은 매우 밀도 깊은 수필로 기억된다. 이러한 부분을 이루어 낸 작가로서의 자세를 매우 칭찬한다.
특히 “깍두기도 술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서사를 단정적으로 마무리하면서도 완전한 승리 선언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적 절제되어 있다. 이는 화자가 자신의 삶을 영웅 서사로 재편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며, 수필 장르에 어울리는 여운을 남긴다.
개인사와 가족사를 감정의 과잉 없이 구조적으로 성찰해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작품에서 오영주 수필가는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은유의 중심을 분명히 세우고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작가적 자질이 충분히 확인됨을 스스로 보여줬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미려 수필가의 <만추>
회상의 기록을 넘어선 관계의 미학
이미려 수필가의 <만추>는 계절의 이행을 서사적 장치로 삼아 모성과 언어 그리고 감각의 기억을 동시에 보여준다. 첫눈이라는 자연 현상은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물지 않고 시간의 결을 인식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화자는 눈이 내리는 순간을 관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장면을 딸과 공유하는 의례로 확장한다. 이 지점에서 텍스트는 개인적 회상의 기록을 넘어 관계의 미학으로 이동한다.
이 글의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운치’라는 추상 명사를 개념 정의 대신 체험의 축적으로 풀어낸 방식에 있다. 작가는 단어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긴장 관계에 놓인 감정들을 병치하며 하나의 정서적 덩어리를 형성한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의 사용 맥락이 의미를 만든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단어는 설명될 때보다 살아 쓰일 때 비로소 작동한다는 점을 이 글은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모녀가 라떼를 나누는 장면은 이 수필의 정서적 중심축이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최초의 경험이라는 미세한 균열이 관계의 깊이를 드러낸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애착 관계에서 나타나는 공유 경험의 강화 효과를 연상시킨다. 다만 작가는 이를 분석하지 않는다. 분석의 언어를 경계하고 감각의 언어를 선택한다. 그 선택이 이 글을 아름다운 서정을 담은 수필로 남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이주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나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에드먼튼이라는 지명은 설명되지 않고 풍경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는 장소를 정체성의 증명 도구로 삼지 않고 감각의 배경으로만 사용하는 성숙한 태도다. 독자는 타국의 풍경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계절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보편적 감각에 접근하면 충분하다.
특히 ‘ 만추’라는 명명 행위는 이 글의 철학적 깊이를 완성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사라짐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오래된 시도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시간성처럼 이 글은 머무르지 않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 자체를 응시한다. 계절을 붙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는 행위는 삶에 대한 온건한 저항처럼 읽힌다. 이렇게 작가의 서정이 음악처럼 흐르면서도 곳곳 정체성에 대한 철학이 녹아내린 라떼 같은 부분이 더욱 이 작품을 아름답게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김남조의 시구는 이 수필의 정서를 과잉 없이 마무리한다. 타인의 언어를 빌리되 자신의 감정선 위에 정확히 놓는다. 인용이 장식으로 전락하지 않고 헌사로 기능하는 드문 경우다. 이러한 작가의 센스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수필 장르가 요구하는 자전성 진솔함과 사유의 밀도를 고르게 갖추고 있다. 과도한 감정의 분출을 경계하고 일상의 미세한 떨림을 신뢰하는 태도가 문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 글은 무엇을 말하려 하기보다 어떻게 머무를 것인가를 묻는다. 이미려 수필가의 그 질문 방식이 매우 성숙하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디카시 부문>
김용순 시인의 <겨울 문턱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핀 꽃>
<겨울 문턱에서>
이 작품은 제목 「겨울 문턱에서」가 먼저 계절의 경계라는 시간성을 선명히 제시하며, 디카시의 출발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사진 속 풍경은 저무는 태양이 강물에 깊게 스며들며 하늘과 수면, 산과 도시의 경계를 모두 붉게 물들이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소멸 직전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포착한 장면이다.
시어 또한 사진의 색채와 호흡을 맞추되, 과도한 설명으로 흐르지 않는다.
“장엄한 붉은 태양을 / 수평선이 삼킬 때”라는 구절은 시각적 장면을 정확히 압축하면서, ‘삼키다’라는 동사를 통해 해 질 녘의 속도감과 비가역성을 부여한다. 이는 디카시에서 중요한 순간 포착의 언어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대목이다. 이어지는 “격렬한 가을 저녁의 작별”은 앞선 이미지의 감정을 한 문장으로 수렴시키며, 계절의 이행을 ‘작별’이라는 정서적 언어로 마무리한다.
이 작품은 감각과 정서의 완성도가 높은 만큼, 사진과 시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전이나 전환의 지점이 조금 더 강화되었다면 디카시로서의 긴장이 한층 더 살아났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사진이 주는 인상을 시가 충실히 따라가고 있어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예측 가능성도 함께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계절의 문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시각과 언어로 동시에 설득력 있게 구현한 성숙한 디카시로 평가된다. 사진 선택의 안목, 시어의 절제, 감정의 수렴 방식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며, 디카시의 기본 미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시선의 각도나 언어의 미세한 비틀림이 더해진다면, 한 단계 더 깊은 작품 세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바람에 흔들리며 핀 꽃>
이 작품은 제목 「바람에 흔들리며 핀 꽃」에서부터 존재의 방식에 대한 은유를 분명히 제시한다. 사진 속 갈대는 역광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며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는데, 그 흔들림은 연약함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생의 태도로 읽힌다. 자연 풍경의 한순간을 포착하되, 시선은 단순한 미감에 머물지 않고 삶의 결을 향해 나아간다.
시의 첫 행 “세월이 침묵으로 피고”는 매우 인상적이다. ‘세월’과 ‘침묵’, 그리고 ‘피다’라는 동사의 결합은 추상과 감각을 동시에 불러오며, 말해지지 않은 시간의 무게를 은근하게 드러낸다. 이어지는 “한 생의 햇살 아래”는 사진의 강한 역광과 정확히 맞물리며, 이미지와 언어가 서로를 보완하는 디카시적 조화를 이룬다.
후반부의 “은빛 머리 백발 되어 / 바람에 미련 없이 털어내는 생”은 갈대를 인간의 삶에 겹쳐 읽게 만드는 결정적 전환점이다. 특히 ‘백발’이라는 시어는 사진의 은빛 질감을 정서적으로 확장시키며, 노쇠가 아닌 완성의 경지로서의 노년을 암시한다. ‘미련 없이 털어내는’이라는 표현은 삶을 내려놓는 태도를 담담하면서도 단단하게 형상화한다.
다만, 시적 진술이 디카시 특유의 극단적 압축과 여백의 미학은 다소 약화된 면이 있다. 의미의 밀도가 높은 만큼, 한두 지점에서 언어를 더 절제했다면 사진과 시 사이에 더 큰 울림의 공간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이 작품은 자연 이미지에 삶의 서사를 무리 없이 겹쳐 올린 안정된 디카시로 삶을 흔들림 속에서도 끝까지 품위 있게 바라보는 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용순 시인의 「겨울 문턱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핀 꽃」두 편의 디카시는 모두 계절과 시간의 경계에서 삶을 성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일관되게 드러난 작품들이다.
「겨울 문턱에서」는 해 질 녘의 장엄한 순간을 통해 소멸과 이행의 긴장을 포착하며, 사진과 시가 안정적으로 호응하는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바람에 흔들리며 핀 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삶의 태도로 확장해 읽어내며, 시간의 축적과 내려놓음의 미학을 깊이 있게 형상화했다.
두 작품 모두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사진 속 이미지에 사유의 깊이를 겹쳐 올리는 디카시적 이해도가 돋보이며, 시어의 질감과 정서적 밀도가 고르게 유지되고 있다. 이는 우연한 감흥이 아니라, 꾸준한 관찰과 내면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지금의 장점인 성숙한 시선과 안정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사진과 시 사이의 간극에서 조금 더 과감한 생략과 전환을 시도해 보시길 기대한다. 그 지점에서 작가만의 더욱 선명한 디카시 세계가 열릴 것이다. 등단을 축하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 속에서 감동과 깊이 있는 디카시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심사위원 합평
<소설 부문>
안재연 「귀인」
안재연 작가의 소설 「귀인」은 부동산 중개인 안재연과 범상치 않은 외모의 중개보조원 정미아의 18년에 걸친 우정과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중개업자 재연은 이웃집에서 강호동을 닮은 위압적인 체격의 여성 미아를 만나게 되고. 거친 첫인상과 달리 미아는 시장통 족발집을 운영하던 억척스러운 생활력의 소유자로, 재연의 제안을 받아 중개보조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으로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두 사람은 가리봉동 일대의 외국인 노동자 세입자 관리, 보일러 고장, 정화조 분쟁 등 부동산 업계의 가장 밑바닥이자 치열한 현장에 서 있었지만, 재연은 '정직한 중개'의 철학을 고수하고, 미아는 특유의 활달함으로 현장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며 둘만의 단단한 파트너쉽을 구축하게 된다.
무당집 매입, 노모의 집을 팔아치운 아들의 비극 등, 부동산을 둘러싼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목격하는 동안 두 사람은 삶의 고비를 깨닫게 되고 함께 자산을 쌓으며 성장해 간다.
소설은 가리봉동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부동산 중개업이라는 직업 세계를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단순한 취재를 넘어선 '삶의 냄새'가 느껴지는 묘사가 탁월해 보인다.
특히 '정미아'라는 한국 소설에서 보기 드문 개성적인 여성상을 보임으로서 외형적 위압감과 내면의 따뜻함,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서사의 추진력을 확보했다고 보인다.
재연은 미아가 자신의 '귀인'이었음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귀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귀인(貴人)'이라는 단어를 단지 운명론적인 만남에 가두지 않고, 노동과 신뢰를 통해 만들어가는 '상호적 관계'로 확장 시킨 점은 인상적이다.
총 평
안재연의 소설 「귀인」은 부동산이라는 차가운 숫자의 세계를 인간의 온기로 데워내며 자본의 현장을 무대로, 여성 노동과 연대, 신뢰의 가치를 그려낸 생활 밀착형 성장 서사시로 볼수 있다.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물, 특별히 경험에서 우러난 사실성,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귀인’이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보여주며 두 중년 여성의 연대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현장의 활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자본의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귀인인가.? 물으며그 질문에 대한 답을 소박 하지만 힘 있게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글은 에피소드가 풍부한 대신 다소 산만해지는 부분도 보이는데 정화조 사건, 무당집 매입, 노모의 다세대 매각 사건 등 각각이 하나의 독립 단편이 될 만큼 밀도 있는 소재들을 다루게 되면서 서사의 응집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를 조금 압축하고 중심 갈등(정미아와 화자의 관계)에 더 집중했다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안재현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힘찬 첫출발을 응원하며 앞으로 우리 시대에 주목받는 신예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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