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문학고을 계간지 상반기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당선 심사평 제 83회 1차 공모
(엘리트 문단의 산실/ 등단의 길잡이)
<시 부문>
김정희 시인의 <햇살이 머무는 부안 변산 마실길> <늦은 눈>
낭만 치유의 서정과 실존적 기다림
김정희 시인의 <햇살이 머무는 부안 변산 마실길>은 자연 속을 거닐며 자아를 비워내는 체험을 담은 관조적 서정시다. 낭만주의적 자연관을 엿볼 수 있으며 현대적 치유 서정이 결합된 양상을 보인다. 시적 화자는 ‘부안 변산 마실길’을 걷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외부 자연을 묘사하지만, 그 본질은 자연 풍경의 기록을 넘어 내면 정화의 과정에 있다. “맑은 햇살이 어깨 위에 내려앉는 길”이라는 시작은 자연을 능동적 주체로 의인화하며, 이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동반자로 인식하는 낭만주의적 세계관과 닿아 있다. 특히 자연 속에서 자아가 치유되고 투명해지는 과정은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자연관과 유사하다. 워즈워스가 자연을 통해 인간 정신의 도덕적이며 영적 회복을 말했듯 이 시에서도 자연은 “내 마음의 먼지까지 털어가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시인의 이미지들 또한 감각적이며 공감각적이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 “풀잎 스치는 소리”,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 오솔길” 등은 시각과 후각, 청각을 결합하여 공간을 살아 있게 한다. 김정희 시인의 이러한 감각의 확장은 독자로 하여금 풍경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걷게 하는 힘을 더한다.
<늦은 눈>은 계절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긴장을 통해 시간과 이별, 존재의 지연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상징주의적 이미지 운용이 엿보이며 실존주의적 불안과 기다림의 서정이 깔려 있다. 봄은 일반적으로 희망과 재생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늦은 눈’이 내리며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부분이 작품에서의 생동감을 더한다. “녹지 못한 시간들이 / 발목을 붙잡는 동안”이라는 표현은 이 시의 핵심적 상징이다. 이는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과거의 시간이 현재 속에 잔존한다고 보았던 인식과 닿아 있으며, 동시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실존주의처럼 인간이 과거의 선택과 기억에 붙잡혀 있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의 이미지 또한 매우 절제되어 있고 이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을 최대화한다. “꽃눈 대신 흰 것들이 내려와”라는 시어는 직접적으로 ‘눈’이라 명명하지 않음으로써 상징성을 강화한다. 또한 김정희 시인은 형식적으로는 단문과 여백을 주면서 멈춤과 지연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주제를 강조한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박정표 시인의 <이별은 원망을 데리고 온다> <영등포에 산다는 것>
감정의 세밀한 해부와 인간의 본질
박정표 시인의 <이별은 원망을 데리고 온다>는 이별을 둘러싼 감정의 폭력성과 위선, 그리고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현대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감정의 해체를 시도하는 표현주의적 성향을 지닌다. 시는 처음부터 “순탄한 이별은 없다”라는 단정적 시어로 출발하며, 이별을 낭만화하지 않고 그 이면의 적대성과 파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잘 가라고 하지만 / 가다가 넘어져라”라는 구절은 겉과 속의 불일치를 노출시키며, 사회적 예의와 내면의 적의를 병치한다. 이 지점에서 시는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말한 인간 도덕의 위선성과도 통한다. 친절이 위선이 되고 관심이 미끼가 되는 순간, 인간의 선의는 권력적 도구로 전락한다. 박정표 시인은 감정을 미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 왜곡과 번역의 과정을 폭로한다. 또한 시인의 결론 또한 마지막의 “이 정도면 다행이다”라는 냉소적 서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원망만 동반한 이별이 오히려 양반이라는 말은 이별이 인간성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이별을 통해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해부하는 실존적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높다.
<영등포에 산다는 것>은 도시 노동자의 삶과 산업화의 기억, 그리고 변화하는 자본의 풍경을 병치한 도시 리얼리즘 시다. 이 작품은 먹거리 이미지로 시작한다. 돼지국밥, 부대찌개, 순대국 등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생존의 속도와 직결된다. “야근을 순대국 먹듯이”라는 시어는 노동의 일상화, 피로의 습관화를 상징한다. 즉 인간은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혹사하며, 도시의 속도는 곧 생존의 속도다. 시인은 또한 구체적 장면을 통해 현실감을 강화한다. 신발 포장, 머리카락 수출, 철공소 망치질, 방세와 연탄 등은 한국 산업화 시대의 단면을 생생히 환기한다. 이 부분은 김수영이나 박노해의 노동시 전통과도 연결된다.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선 가족과 고향을 향한 책임의 매개다. 이렇게 “통장에 남은 버스비는 / 부모님 고향 약방으로 입금되었지”라는 시어가 시의 무게감을 더한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한 비판에 머물지 않는다. 시인은 도시를 단순한 공간보다 노동과 자본, 기억과 세대가 교차하는 역사적 장소로 형상화한다.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지만 서정적 온기를 잃지 않는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양효진 시인의 <쓰레기 봉투> <인생>
존재의 존엄과 휴머니즘
양효진 시인의 <쓰레기 봉투>는 도시의 주변부에 놓인 노파의 행위를 통해 존재의 존엄과 잔존하는 온기를 포착하는 휴머니즘적 작품이다. 동시에 사소한 일상의 장면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미시적 상징주의의 성격도 함께 보여준다. 시의 배경은 “노을 진 골목길”이다. 양효진 시인은 노을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영리하게 보여주며, 굽은 등을 일으켜 봉투를 헤집는 노파의 모습이 단순한 생계 행위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문체가 특히 훌륭하다. 이 시의 중심은 고발이 아니라 선택에 있다. “틈이 있어 보이는 봉투만 골라” 담는 행위는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선 인생을 살아온 방식의 은유다. 화자는 이를 “조금 남은 온기를 고르는 듯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신체의 세부 묘사 또한 사실적이다. “낡은 장갑 끝이 해어지고 / 그 속의 손마디마다 세월이 앉아 있다”라는 표현은 시간의 축적을 육체에 새긴다. 그리고 시인이 다시 꺼내는 노을은 사라지는 빛이면서 동시에 가장 따뜻한 색채를 띤다.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도 온기가 남아 있다는 인간 존재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휴머니즘적 시선이 매우 품위있고 절제된 서정이 아름답다.
<인생>은 자아의 상처와 흔들림, 그리고 그 속에서의 생존을 노래한 실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정된 뿌리를 갖지 못한 존재의 불안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스스로의 삶을 인정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 잃어버린 시간들”이라는 첫 시어는 존재의 기반 상실을 보여준다. 이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던져진 존재’의 상태를 연상시킨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세계에 던져져 흔들린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렸다”는 표현은 이러한 수동성을 드러낸다. 또한 “꽃길 따위는 없었다 / 걸어온 길마다 종이꽃 투성이”라는 구절에서 ‘종이꽃’은 핵심 상징이다. 종이꽃은 생명이 없고 향기도 없다. 그러나 시는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종이꽃은 애쓰고 있었다”는 구절은 이 시의 전환점이다. 비록 생명은 없지만, 애씀은 존재한다. 반복과 무의미 속에서도 인간은 밀어 올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듯 양효진 시인은 이러한 상징을 종이꽃으로 만들어 낸다. 드디어 “나는 살아낸 것이다”라는 시어를 통해 실존적 고통을 통과하여 자기 긍정에 이르는 서사라는 점에서 시인의 성찰과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형준 시인의 <불> <개싸움>
성찰을 촉구하는 현대적 알레고리
이형준 시인의 <불>은 사소한 방심이 어떻게 전면적 파국으로 확장되는지를 단순하고 직선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상징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거대한 사건의 원인을 외부의 악으로 설정하지 않고‘작은 불씨’라는 미미한 계기에서 찾는다. 이는 현대 사회 비판적 성격을 보여주며, 인간 내면의 나태와 무책임을 겨냥하는 도덕적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시에서 불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인간의 안일함을 먹고 자라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귀찮고 / 괜찮다는 / 안일한 / 마음”이라는 시어는 불의 연료가 물질이 아니라 태도임을 명확히 한다. 이 점에서 불은 분노, 욕망, 증오, 혹은 사회적 갈등을 상징하는 다의적 기호가 된다. 처음에는 “아주 작고 / 약한 작은 불씨”였지만, 방치와 무관심 속에서 성장한다는 설정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비극은 악마적 의지보다 일상의 무사유에서 비롯된다는 통찰과 닮아있다. 이형준 시인은 구체적 사건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개인적 관계의 붕괴, 사회적 재난, 혹은 전쟁까지도 연상시킬 수 있는 상징주의를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감정의 세밀한 묘사보다는 명제적 전달에 집중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고 독창적인 작품이다.
<개싸움>은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개들의 싸움을 통해 인간 사회의 폭력성과 방관을 드러내는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단순한 상황 서술이지만, 그 이면에는 통제의 상실과 집단적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 자리한다. 두 마리의 개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긴장을 높여가는 장면은 갈등의 전조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주인은 불구하고 그 누구하나 / 말릴 기미가 안 보입니다.”라는 대목이다. 이는 폭력 그 자체보다도 방관을 문제 삼는다. 이 장면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부조리한 세계처럼 책임질 주체가 사라진 공간을 보여준다. 결국 싸움은 “누군가 지쳐 / 아니면 피가 터져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이 결말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적 폭력을 암시한다. 시는 직접적으로 인간을 언급하지 않지만, 독자는 개들의 모습에서 인간 사회를 읽게 된다. <불>이라는 작품에 나타나는 우화적 장치는 이 작품에서도 매우 새롭게 쓰인다. 시인의 감정의 과장 없는 문체는 오히려 폭력의 잔혹성이 도드라지게 한다. 이 작품은 갈등의 본질을 묘사하고 그것을 방치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한준혁 수필가의 <셋째 아들>
호명의 기억과 침묵의 서사
한준혁 수필가의 <셋째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익숙한 가족 서사를 다루고 있지만, 감정의 과잉이나 효의 미화로 기울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단한 필력을 보여준다. 화자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이 놓여 있던 ‘셋째’의 자리와 그 익숙함을 동시에 성찰한다. 사랑을 고백하기보다 불렸던 이름을 다시 불러보는 방식으로 관계를 복원하려는 이 절제된 태도가 이 수필의 품격을 높인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셋째 아들’이라는 호칭이 놓여 있다. 이름이 아닌 순번으로 불리는 이 호명은 단순한 가족 내 위치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화자의 정체성을 규정해 온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괜찮은 쪽으로 남겨두는 이름”이라는 표현은 특히 인상적이다. 먼저 아파도 되는 자리, 대신 맡겨도 되는 자리라는 인식은 한국적 가족문화 속에서 암묵적으로 존재해 온 역할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이 자리를 원망으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가 익숙했고 아버지도 그 자리에 자신을 두는 것이 편했을 것이라 말한다. 이 담담한 인정이 글의 균형을 만든다.
특히 “논에 물은 봤냐”라는 질문은 이 작품의 핵심 이미지다. 표면적으로는 농사에 대한 염려이지만, 그 안에는 아들에 대한 안부와 걱정이 겹쳐 있다. 아버지는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일을 통해 표현한다. 이 간접 화법은 한국적 부성의 전형을 보여주면서도 말하지 못한 사랑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작가는 이 장면을 감상적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과 침묵을 통해 의미를 축적한다. 먹먹함은 설명되지 않고 남겨진다.
이 수필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은 ‘불리는 존재’에서 ‘부르는 존재’로 이동하는 구조다. 작품은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던 기억에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화자가 아버지를 부르는 자리로 전환된다. “아버지. 셋째 아들 부르고 싶어, 어찌 계시나요.”라는 문장은 단순한 그리움의 표현이 아니다. 더 이상 응답이 돌아오지 않는 관계를 스스로 이어가려는 행위다. 여기서 호명은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처럼 작동한다. 불리지 않는 순간에도, 스스로 부름으로써 관계를 현재화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침묵을 중요한 서사 장치로 활용한다. 아버지가 질문조차 꺼내지 못한 채 남긴 침묵은 이전의 모든 말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화자는 그 침묵을 뒤늦게 해석하며, 아버지가 자신에게서 일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고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극적인 사건 없이도 깊은 정서를 형성한다. 수필의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창한 사건 대신, 사소한 반복과 미묘한 변화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문장 또한 과장되지 않고 안정된 호흡을 유지한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폭발시키기보다, 회상의 결을 따라 천천히 쌓아 올린다. 설명은 절제되어 있고, 판단은 유보된다. 이 절제는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아버지, 각자의 불렸던 이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개인적 체험이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이로써 이 작품은 체험을 넘어선 성찰의 세계를 구축한 훌륭한 문학적인 수필을 완성하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임명옥 수필가의 <자식 반성문>
몸의 통증에서 타인의 고통으로, 성찰의 힘
임명옥 수필가의 <자식 반성문>은 발목을 접질린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서사의 종착지는 ‘아버지의 고통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딸의 마음’에 닿아 있다. 일상의 부상이라는 미미한 계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구조는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성찰로 확장하는 수필의 구성을 잘 담고 있다.
글의 처음은 매우 구체적인 신체 감각으로 채워져 있다. 시큰거림, 절룩거림, 반깁스, 목발, 파스 자국 등 감각적 언어가 촘촘하게 배치된다. 이 촘촘함은 통증이 얼마나 쉽게 의식을 점령하는지를 드러낸다. 발목의 통증은 곧 세계의 중심이 된다. 병원을 전전하고, 치료법을 바꾸고, 과잉 대응으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과정은 ‘빨리 나아야 한다’라는 강박의 서사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련한 짓으로 흉한 꼴을 만들었다”라는 자각을 통해 자기 연민과 과잉 돌봄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이 솔직함이 글의 신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병상 일기를 넘어서는 지점은 아버지의 개흉 수술 장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호치키스로 찍힌 가슴, 긴 실을 쭉 뽑아내는 장면, 고문실 같은 침묵의 병실은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앞서 자신의 발목에 집중하던 시선이 이제 아버지의 몸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독자는 하나의 철학적 전환을 목격한다. 자기 몸의 통증은 선명하지만,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상상’에 머문다는 깨달음이다.
이 지점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통은 결코 나의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앞에서 윤리적 책임을 느낄 뿐이라고 말한다. 화자 역시 아버지의 극심한 통증을 보았지만, 당시 더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자신의 고단함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는 자기중심성에 대한 뼈아픈 인정이다. 타자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을 경계하는 태도는 이 글의 깊이를 형성한다.
또한 과장된 참회나 눈물의 고백을 하지 않는다. 작가는 담담한 문장으로 반성의 과정을 밟아간다. 특히 아버지의 말인 “네가 더 힘들지”라는 대목은 이 작품의 정서적 정점이다. 부모의 사랑은 늘 자신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작가는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 울컥함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또한 “반성문”이라는 표현은 흥미롭다. 이는 사랑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반성은 자기 비하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다시 붙드는 다짐에 가깝다.
이 수필은 개인적 체험을 통해 타자의 고통과 사랑의 본질을 사유하게 한다. 통증이라는 구체적 경험을 매개로 자기중심적 시선을 성찰의 자리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한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무엇보다도 이 글은 감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임명옥 작가는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독자 각자의 기억을 건드린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주한 수필가의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한 인간의 의지와 시대를 관통하는 힘
이주한 수필가의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장애와 가난이라는 이중의 제약 속에서도 스스로 삶의 방향을 개척해 온 한 인간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글의 미덕은 역경을 극복했다는 결과에 있지 않다. 오히려 ‘희망의 불씨’라는 반복적 상징을 통해 꺼질 듯 흔들리면서도 끝내 사그라지지 않는 내면의 의지를 차분히 드러낸 데 있다.
서두에서 제시되는 혹독한 겨울과 얼어붙은 몸과 마음은 단순한 계절 묘사가 아니다. 이는 시대적 냉혹함과 사회적 편견을 상징하는 배경 장치다. 소아마비 후유증, 모욕적 언어, 교육 기회의 박탈은 개인의 불운을 넘어 구조적 차별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특히 중학교 교복을 부러워하며 아이스케키 통을 메던 장면은 결핍을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장면이다. 추상적 ‘가난’을 눈앞의 교복과 교모라는 시각적 대비를 통해 독자의 감정을 설득한다.
전환점은 국립직업훈련원 모집 공고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아, 바로 이곳이!”라는 짧은 외침은 내면의 점화 장면이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처음으로 불씨가 튀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글은 의지의 서사로 방향을 잡는다. 꿈이 생기자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라는 표현은 희망이 인간의 에너지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좌절 이후의 태도에 있다. 두 차례 탈락,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교사가 될 수 있어요.”라는 차별적 발언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을 드러낸다. 특히 유서를 써놓고 생을 끝내려 했다는 고백은 극단의 절망을 숨기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글은 영웅 서사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약함과 무너짐을 인정함으로써 서사의 진정성을 확보한다.
훈련원 원장을 찾아가고 탄원서를 준비하는 과정은 작은 불씨를 손으로 감싸 지키는 장면처럼 보인다. 화자는 제도의 벽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마지막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추가 합격 통보는 행운이 아닌 버텨낸 시간에 대한 응답처럼 다가온다.
이후의 40년 교직 생활은 불씨가 횃불로 옮겨붙는 과정이다. 제자를 면접장까지 데려다주고 합격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결실을 맺는 장면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타인의 가능성을 밝히는 삶’으로 확장된다.
퇴직 이후에도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독서 토론 활동, 글쓰기, 라디오 DJ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은 삶을 정지시키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활동의 나열을 넘어서 ‘역할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삶’의 방식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의미를 발견할 때 고통을 견딜 수 있다. 화자의 삶 역시 의미를 창조하며 자신을 지속해 온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글은 비교적 담백하고 직선적이다. 과장된 수사 대신 경험을 차례로 제시하는 방식은 진술의 신뢰도를 높인다. 특히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이라는 가정법적 질문은 독자를 사유의 자리로 초대한다.
이 작품은 성공담이 아니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불씨의 기록이다. 차별과 좌절, 절망과 재도전의 시간 속에서 불씨는 작게 흔들렸지만,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씨는 이제 다른 이들의 삶을 비추는 빛이 되었다.
이 작품은 희망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희망이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얼마나 끈질긴지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수필은 한 개인의 인생사를 넘어 인간 의지의 본질을 조용히 증명하는 기록이며, 수필로서의 훌륭한 교훈을 주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동시 부문>
신선옥 시인의 <노란 참새떼> <제 세상이다!>
감각의 전환과 시선의 이동이 빚어낸 동심의 세계
신선옥 시인의 <노란 참새떼>는 가을의 결실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시선을 교차시키는 작품이다.
“가을볕에 / 여물어 떨어진 씨앗들”이라는 도입은 계절의 깊이를 간결하게 제시하며 시적 공간을 단단히 구축한다. ‘여물어’라는 표현은 단순한 상태 묘사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과 성숙의 의미를 내포하며 작품 전체의 정서를 지탱한다.
이어 “누가 우릴 부른다 / 참새!”라는 구절은 시점을 참새의 위치로 이동시키며 독자에게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자연의 존재와 동일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의 “짹짹…”은 작품의 핵심적 완성이다. 인간이 자연을 부르는 행위가 오히려 자연의 언어를 모방하는 행위로 전환되면서, 인간과 자연의 위계는 사라지고 상호 교감의 장이 형성된다. 절제된 행 구성과 여백의 활용은 동시가 지녀야 할 함축성과 여운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제 세상이다!>는 일상의 소박한 장면을 역동적 상상력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단감 한 봉지 / 사들고 오는 길”이라는 구체적 상황 제시는 현실감을 부여하며 독자를 작품 속으로 이끈다. 이어지는 “구르기하고 춤추고”와 같은 동작 중심의 서술, 그리고 ‘쌔앵…’, ‘쏘옥!’과 같은 의성어·의태어의 사용은 장면에 속도와 리듬을 부여한다. 이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시청각적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은행잎이 단감 봉지 속으로 들어가는 설정은 사물의 세계를 하나의 사건으로 전환시키는 상상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마지막의 “봉지가 시끄러워졌다”는 문장은 의인화를 통해 장면을 완결하며, 일상적 공간을 생명의 무대로 변모시킨다.
신선옥 시인은 감각의 혼합과 시선의 이동이라는 동시의 본질적 미학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설명을 앞세우지 않고 이미지와 소리, 움직임으로 장면을 완성하는 태도는 이미 성숙한 시적 역량을 보여 준다. 이번 당선은 단지 한 편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을 가능성을 예고하는 징표라 여겨진다. 앞으로 더욱 깊은 사유와 넓은 시야로 동시의 지평을 확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의 시 세계가 한층 더 단단해져 우리 아동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힘찬 정진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합평
<디키시 부문>
홍희정 시인의 <그믐밤> <허기>
<그믐밤>
사진 속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밤하늘 위에 걸린 그믐달의 정적이 언술과 절묘하게 맞물리며, 사물과 감정의 경계에서 맺히는 ‘시적 소망’을 섬세하게 포착한 디카시다.
“빙글빙글 올려다본 그믐달 / 손을 뻗고 다리를 곧추세워 / 닿을 수 있다면"
이 구절은 시적 화자가 품고 있는 어린 마음의 순수한 열망과 육체적 한계의 미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믐달이라는 ‘결핍된 달’의 형태와 시적 화자의 ‘닿고자 하는 의지’가 맞물리며, 존재적 갈망이 조용히 솟아오르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존재적 갈망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살아 있다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꿀꺽 삼켜 / 가슴에 담아보리”는 그믐달을 삼킨다는 상상적 이미지로, 현실의 도달 불가능성을 시적 상상력으로 뛰어넘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부족한 빛마저도 마음속에서 온전히 채워 의미를 회복하려는 내적 움직임으로 읽힌다. 또한 디카시가 가진 ‘찰나의 포착, 감정의 농축’이라는 특성이 정확히 작동한 장면이다.
사진이 전달하는 정적과 언어의 상승 효과를 통해, 결핍된 세계에서 의미를 온전히 품어내려는 인간의 내면적 소망을 담담한 어조로 표현한 작품이다.
<허기>
눈 덮인 들판이라는 광활한 이미지 위에서, 내면의 결핍과 정서적 허기를 매우 절제되고 담백한 언어로 드러낸 작품이다. 사진 속 끝없이 펼쳐진 하얀 들판과 선명한 파란 하늘은 외로움과 고독이 스며드는 공간적 배경으로 기능한다. 이 풍경의 ‘과도한 여백’은 곧 시적 화자의 내면에 자리한 ‘비어 있음’을 반영하지만 채울 공간의 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 눈물은 땅 밑으로 흐른다”는 문장은 감정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대신, 아래로 가라앉는 역진적 이미지를 통해 내면의 무력함과 허기짐을 더 깊게 체감하게 한다. 감정의 방향을 역진시킴으로써 시적 효과를 강화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외로움에 / 짭조름한 단무지가 먹고 싶다”는 이 작품의 결정적 한 방으로, 시적 긴장이 가장 밀도 높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고독의 감정을 ‘짭조름한 단무지’라는 일상의 소박한 음식으로 연결시킨 순간, 추상적 감정이 구체적 물성으로 변환되며 디카시만이 구현할 수 있는 감정의 물질화가 일어난다. 이 전환은 가볍지 않고, 오히려 눈밭의 공허함과 단무지의 짠맛이 대비를 이루며 삶의 허기와 정서적 결핍을 정확히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넓은 풍경과 짧은 언어 사이에서 감정의 균열을 드러내며 사진과 텍스트의 결합 미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디카시적 감각이 돋보인다.
홍희정 시인의 <그믐밤> <허기> 두 작품은 시각적 이미지의 정확한 활용, 절제된 언어 선택, 마지막 행에서의 정서적 반전 혹은 응축,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만들어내는 의미의 상승효과를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개성적 이미지와 사유의 결을 갖춘 디카시로 등단작으로 충분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등단을 축하하며 더욱 깊이 있는 문학적 성숙으로 귀한 창작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소설 부문>
김성일 소설가윽 "나의 영원한 긴 머리 소녀"
김성일 작가의 소설 「나의 영원한 긴 머리 소녀」 는 기억이라는 렌즈를 통해 복원한 1970년대 청춘의 연대기다.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중년 남성 '성우'의 회고록 형식 소설로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레코드 공장 뒷마당에서 나무 자동차를 타던 열 살 여름, 분홍 원피스의 소녀 '영은'과 처음 만나 '우리만의 성'을 짓는다.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진 뒤, 중학교 교회 수련회에서 재회하여 주보 편집실, 한강 스케이트장, 남산 순환로, 코스모스 백화점 롤러장, 프랑스 문화원 등 1970년대 서울의 청춘 공간을 함께 누빈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 전학과 입시의 압박 앞에 성우는 정독도서관 담장 아래서 비겁하게 이별을 고하고, 중국집 골방에서 오열한다. 10년 후인 1987년, 광고 미팅룸에서 카피라이터가 된 영은과 극적으로 재회하여 하루 동안 옛 거리를 함께 걷지만,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며 작별한다. 노년의 성우는 눈 내리는 창가에서 카펜터스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고, 그녀를 '영원한 미완성'으로 간직하겠다고 고백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시대 재현의 탁월함이 이라고 보여진다. 비둘기호 열차, 코스모스 백화점 롤러장, 프랑스 문화원, 등사기 철필 소리, Boogie Fever가 울리는 사이키 조명까지, 1970년대 서울의 질감이 장면마다 살아 숨 쉰다. 단순한 향수의 나열이 아니라 서사의 필요에 의해 배치된 디테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감각적 문장의 밀도도 주목할 만하다. "비누 향과 풀내음과 햇살을 머금은 빨래가 뒤섞인 내음"이나 "차가운 물줄기가 얼굴의 화끈거림을 씻어냈다"처럼 후각·촉각이 정서와 정밀하게 결합되어 독자를 장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영은이라는 인물의 입체성도 돋보이는데, 단순히 사랑받는 소녀로 소비되지 않고, 문장력 있는 편집자, 단호한 결기, 우승 행렬에서 버스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해주는 사려 깊음 등 인간적 깊이를 갖춘 캐릭터로 세워진다.
구조적 설계 역시 안정적이라고 보여진다, 프롤로그에서 카펜터스 음악으로 시작해 에필로그에서 음악을 멈추는 수미쌍관, 나무 자동차의 '바퀴 없음'이라는 상징이 전편을 관통하는 구조는 작가가 이야기를 단단히 붙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사랑의 본질은 “함께 있었던 시간의 결”이라는 메시지를 잔잔하게 전하며
"미완성으로 남겨두었기에 가장 아름답다"는 결말의 철학은 그 자체로 이 소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다소 아쉬운 점은 성우의 내면이 관찰보다 설명에 기울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깨달았다", "이제야 고백할 수 있다"처럼 작가가 직접 의미를 해설하는 문장들은, 독자가 스스로 감동을 발견할 기회를 앞질러 버린다. 영은과의 10년 공백의 서술도 다소 성기는 면이 있다 라고 보여 지는데, 광고 미팅룸 재회 장면의 완성도에 비해 그 10년 동안 두 사람이 어떻게 각자의 삶을 살았는가는 대화로만 처리되어 극적 밀도가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총 평
김성일 작가의 소설 「나의 영원한 긴 머리 소녀」 는 군더더기 없이 정직하게 쓴 소설이다. 첫사랑의 설렘을 감상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시대와 공간과 두 인물의 결을 촘촘하게 직조해낸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서정성이 매우 우수하며 시대성이 탁월하고 인물 심리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습작의 수준을 훌쩍 넘어서 충분히 완성도 있는 단편으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은 감각적 복원력이 뛰어난 서정적 성장소설로서, 특히 동시대를 통과한 독자에게는 강한 공감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여 훌륭한 소설가로 성장해 주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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