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문학고을 계간지 상반기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당선 심사평 제 84회 1차 공모
(엘리트 문단의 산실/ 등단의 길잡이)
<시 부문>
김지원 시인의 <경계> <환기>
실존적 감각과 구성의 힘
김지원 시인의 <경계>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을 통해 존재의 흔들림을 포착하는 사유가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경계’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익숙함과 낯섦, 현실과 환상, 안정과 불안 사이의 중간 지대를 탐색하며, 그 불안정한 상태 자체를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제시한다. 시인은 ‘틈’과 ‘향기’라는 모두 비가시적 요소를 선택해서 변화를 명확한 사건으로 보여주지 않고 감각의 미묘한 변형을 시선을 보여준다. 이러한 김지원 시인의 시선이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틈과 경계를 익숙함과 낯섦을 통해 긴장감의 공간으로 해석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것도, 완전히 익숙한 것도 아닌 상태의 핵심 공간을 보여준다. 특히 “스쳐 지나던 시선 속 불꽃은 / 메마른 마음에 자국을 남긴다”라는 시어는 ‘불꽃’이라는 일시적인 감각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남기는 ‘자국’이라는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시인의 치밀한 구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경계>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인식의 전환을 섬세하게 포착한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환기>는 일상의 사소한 행위를 통해 내면의 상태를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환기’라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정신의 환기와 존재의 재정렬을 다룬다. “보이차 한 잔과 사과 몇 조각 속에 묻고 / 익숙한 노래 한 곡을 찾아 들으며”라는 시어를 통해 특별한 사건이 아닌 일상을 구성하는 시어들이 빼곡하게 시를 채운다. 이러한 일상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 느껴지는 개운함”이라는 내면의 환기로 폭발되고 완성된다. 이러한 ‘자기 회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시인은 섬세하고 명료하게 주제를 정립한다. <경계>에서도 보여주듯 이러한 시적 구성은 김지원 시인만의 넓은 스펙트럼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시인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종근 시인의 <소래포구> <마을버스>
리얼리즘과 예리한 관찰력
이종근 시인의 <소래포구>는 특정한 장소를 통해 단순한 어시장 풍경을 묘사하는 관찰력을 뛰어넘어 그 속에서 지속되는 생의 방식을 포착하는 작품이다. 특히 작품에서 보이는 ‘중단된 시간’이 눈에 띈다. 이러한 시간이 겹쳐진 묘사는 이종근 시인의 필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한“번지수를 알 수 없는 앵벌이가 공존하는”라는 시어를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뒤섞인 경계적 장소로서의 소래포구를 조명하며, 다각적인 생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시인의 뛰어난 관찰력까지 보여준다. <소래포구>는 시간들이 쌓이고 이것이 생을 동시에 드러낸 풍경을 매우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이종근 시인만의 시선을 담은 묘사된 시어들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단어의 배열과 연결등이 매우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시적 구성 또한 매우 인상 깊은 작품이다.
<마을버스>는 일상의 교통수단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통해 독특한 시적 장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종근 시인만의 시선이 이 작품에서도 매우 새롭다. 바로 무생물적 요소인 마을버스를 의인화하여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선 고행하는 존재로 형상화 하는 부분이다. 이는 시인의 뛰어난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오늘도 세상의 허물을 씻으려 / 마니차 경전 돌리듯 카드를 슥 밀며 내린다”의 시어에서도 일상의 행위(교통카드 사용)가 종교적 의례로 변환되는 부분은 매우 놀랍다. ‘마니차’는 경전을 돌리는 수행 도구로 반복적 행위를 통한 정화의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이 작품은 일상의 이동을 종교적 수행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작품이며, 삶의 한 부분을 시인의 창의력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성공한 시라 할 수 있다. 현실의 고단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점에서 깊은 사유를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우창근 시인의 <자화상> <손자국>
형이상학적 시선과 실존의 흔적
우창근 시인의 <자화상>은 자아를 직접 서술하지 않고 ‘창문’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기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붕괴되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통적인 자화상처럼 내면을 고백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는 행위와 보이는 관계 자체를 해체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 시의 형이상학적 경향과 깊이 연결된다. 특히 “그 속에서 나는 밖이 된다 / 그는 안이 된다”라는 시어는 이 시의 핵심적인 시인의 시선을 정의한다. 내부와 외부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선에 따라 교환되는 점이 매력적인 이 작품은 주체와 객체의 경계의 시야를 창의적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오규원 시인의 언어 해체적 시 세계에서 볼 수 있는데, 오규원 시인이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해체했다면 이 작품은 시선과 경계의 구조를 해체한다. 이러한 <자화상>의 작품은 우창근 시인의 현대 형이상학적 작품으로 심도 있게 탐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손자국>은 흔적을 통해 존재의 상태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중심으로 그 안에 쌓인 먼지와 자국, 냄새 등을 통해 소멸되지 않는 흔적을 드러낸다. 이는 물질적 기억과 존재의 잔존성을 다루는 경향과 연결된다. “창문을 여미는 건 / 집의 껍질을 벗기는 일”의 시어에서 ‘창문’은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경계이자 동시에 그것을 해체하는 장치이다. 창문을 여는 행위는 단순한 환기를 넘어서 공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행위로 제시되는 부분이 흥미롭다. 또한 “나는 창가에 멀뚱히 서서 / 바람을 맞는 게 아니라 / 방이 남긴 시간을 게워낸다”라는 시어는 이 시의 핵심적인 전환이다. 화자는 단순히 공간을 환기하는 존재를 넘어 공간의 시간과 기억을 배출하는 존재가 된다. 또한 화자는 공간을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바로 그 안에 남겨진 흔적으로 전환된다. 이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깊은 사유가 돋보이며, 우창근 시인의 높은 밀도의 서정성을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정재용 시인의 <그네> <세 그루 나무>
정서의 탁월한 이미지화
정재용 시인의 <그네>는 단편적인 장면들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가족의 위기와 회복, 그리고 세대 간 관계의 순환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는 서사를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이미지들을 통해 독자가 그 사이를 연결하도록 만드는 여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칭다오 호텔 앞 / 손 놓친 막내 / 휘어진 아내의 뒷모습”은 사건의 핵심 장면을 파편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다시 화자는‘부모’의 위치에서 ‘자식’의 위치로 이동한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였던 화자가 다시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존재로 전환된다. 이 부분이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시인은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실과 회복, 그리고 세대 간 정체성의 순환을 절제된 이미지로 구현하는 이미지화가 탁월하며, 최소한의 언어로 깊은 정서를 환기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 그루 나무>는 특정 장소에 축적된 시간과 그 속에서 반복되는 떠남과 돌아옴의 구조를 통해 존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는 ‘나무’라는 정지된 존재와 ‘사람’이라는 이동하는 존재를 대비시키며, 기억과 시간을 교차시킨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이 시에서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로 묘사하지 않고 기억을 저장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뛰놀았던 기억도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어지는 경험의 기억도 나무라는 변하지 않는 매개체를 보여주며 시인은 장면 장면 하나를 이미지로 남긴다. 정재용 시인은 오래된 필름을 돌리듯 한 장면 하나하나를 서사의 이미지로 만들어 시적 정서를 고취하고 주제를 부각한다. 이 작품은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의 시간과 그것을 묵묵히 저장하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 보여주는 이미지가 매우 탁월한 작품으로 절제된 언어 속에서 깊은 시간 의식을 구현한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지닌 시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수필 부문>
오유정 작가의 <이화이 꽃>
인물을 만들어 내는 진정성 있는 서사
오유정 작가는 한 인물의 생애를 장례라는 현재의 시간 위에 겹쳐 놓으며 기억의 결을 따라 서사를 확장해 나간다. 중심에는 ‘이화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름은 단순한 이름의 기능을 넘는다. 한 시대를 통과한 여성의 존재를 압축하는 기호로 보여주며 동시에 작가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서사는 그 이름을 둘러싼 기억을 현재와 과거로 교차시키며 한 인간의 삶을 다면적으로 회상시킨다.
처음 병원 공사 장면은 이 글의 중요한 장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과 오랜 시간 지연된 공사는 죽음을 향해 서서히 이동해 온 어머니의 시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금계화가 피던 들판과 공사 차량이 뒤엉키는 풍경은 생과 소멸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공간 설정은 이후 등장하는 장례식 장면과 자연스럽게 접속된다. 장소가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서사적 완성도가 높다.
그리고 전환된 작품의 중심은 전화 한 통이다. 요양원 원장의 짧은 전달. 그 이후 이어지는 정지된 시간의 감각. 화자는 울음을 곧바로 터뜨리지 않는다. 대신 멍하니 앉아 있는 상태를 통과한다. 이 지연은 감정의 진폭을 오히려 더 깊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 즉각적인 비탄보다 안도의 숨이 먼저 나온다는 서술은 인간 심리의 복합성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표현은 감정을 단선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성숙한 서술 태도로 읽힌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은 장례식장의 정경과 함께 어머니의 생애를 호출한다. 특히 ‘손’에 대한 반복적 묘사는 꽤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손이라는 구체적 사물에 의미를 응축시키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를 이미지로 환원하는 방식은 수필의 좋은 성취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주목했던 것은 문장의 리듬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구어적 표현과 서정적 문장이 교차하면서도 전체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감정의 고조 지점에서 과잉을 자제한 점도 긍정적이다. 마지막 기도문 역시 감상으로 흐르기 직전에서 멈춘다. 이 절제가 작품의 품위를 잔잔하게 유지한다.
그리고 작가는 자전적 체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유의 확장을 확보하고 있다. 기억의 파편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특히 인물 형상화가 선명하며 장면 전환이 자연스럽다. 개인의 삶과 시대의 결을 함께 드러낸 점에서 완성도가 높다.
오유정 작가는 한 여성의 생애를 통해 세대와 시간의 흐름을 성찰하며, 이미지의 선택이 정확하고 정서의 밀도가 유지되는 작품을 보여준다. 또한 수필이 지닌 기록성과 사유성을 균형 있게 구현한 글을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정진 작가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나이>
개인 서사와 집단 서사를 교차하는 필력
정진 작가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나이>는 한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면서도 그 삶을 통해 재일 조선족 공동체의 형성과 확장, 그리고 디아스포라 정체성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글은 동창 ‘마홍철’이라는 구체적 인물을 중심에 두고 있으나, 단순한 인물 소개나 성공담에 머물지 않고 그를 매개로 한민족의 역사적 기억과 공동체적 윤리를 호출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개인 서사와 집단 서사를 교차시키는 수필적 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하여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적 배경, 일본 이주 이후의 노동 경험, 그리고 공동체 조직 활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하나의 연대기적 구조를 형성하며 독자에게 인물의 삶을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한다. 또한 발해의 옛 터전을 언급하며 대조영의 서사를 환기하는 대목은 인물의 삶을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역사적 계보 속에 위치시키려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한다. 매우 놀랐던 것은 이러한 사실을 매우 선명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필력이다. 이러한 필력은 글의 말미에서 한용운의 시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인물의 삶을 민족적 사명과 연결 짓는 해석을 보여주는 작가의 구성이 탄탄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롤랑 바르트가 말했듯이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의미로 조직되는가에 있다. 이 글 역시 풍부한 사실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그것을 조직하는 구성에 부족함이 없이 뛰어나다. 이러한 문필력은 매우 중요한 작가의 주제를 펼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적 서사가 넘치는 지금 시대에서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보여지는가? 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이런 부분에서 정진 작가의 수필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또한 글 후반부에 등장하는 ‘민들레’의 비유는 작품 전체를 묶어줄 수 있는 중요한 상징으로 읽힌다. 어디서든 뿌리내리고 번져가는 민들레의 생명력은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속성과 잘 맞닿아 있다. 이러한 상징적 언어를 찾아낸 작가의 깊은 문학적 능력이 돋보인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사나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 인물의 삶을 비추고 공동체와 민족 정체성을 사유하려는 분명한 문제의식과 풍부한 자료를 이 작품은 갖추고 있다. 또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집단의 기억을 환기하는 의미 있는 수필의 역할도 작가는 놓치지 않고 있다. 정진 작가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소설 부문>
박정섭 소설가의「트라이레마」
트라이레마
박정섭 작가의 소설 <트라이레마> 는 62년생 대구 출신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당시 대학을 다니던 청춘들이 겪었을 법한 시대적 공기와 개인적 고뇌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작품으로 5·18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그 전야(前夜)의 공기를 섬세하게 포착한 우수작이다. 거대 역사를 배경으로 삼되, 주인공의 내면을 통해 그 역사를 굴절시키는 방식은 특별히 인상적이다.
'트라이레마'—세 개의 딜레마—는 혁명(상운), 사랑(유진), 평화(형섭)라는 세 축이 어느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주인공을 조이는 구도로서 치밀한 소설 구조 그 자체이다. 이는 제목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소설의 뼈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1980년 5월 1일, 대전. 공대생 녹원은 룸메이트 상운의 압박에 이끌려 시위대에 합류하지만, 최루탄 가스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요의(尿意)**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대열을 이탈한다. 도망친 골목의 낯선 민가 마당에서 라일락 향기를 만나고, 약속이 있던 간호학과 신입생 유진을 떠올리지만 땀과 수치로 범벅된 몸으로 그녀 앞에 설 수 없었다. 시위대에도 다방에도 돌아가지 못한 그는 대신 에스페란토 강좌로 피신하듯 들어가 선배 형섭과
'폭력 대 평화적 언어'의 충돌을 맞닥뜨린다. 밤이 되어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상운은 승전보를 쏟아내고, 녹원은 편지와 일기를 쓰며 스스로에 직면한다. 투사 상운, 순결한 유진, 이상주의자 형섭—세 갈래 진실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녹원의 오월은 라일락 향기 속으로 침잠한다.
대열 이탈의 이유로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아닌 생리적 욕구를 선택한 것은 이 소설의 가장 빛나는 결정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것은 영웅적 거부도 비열한 배신도 아닌, 인간의 몸이 먼저 항복한 순간이다. 이 디테일 하나가 녹원을 진부한 지식인 방관자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끌어올린다.
녹물 → 라일락 향기 → 잎의 쓴맛 → 매캐한 페퍼포그로 이어지는 감각의 연쇄가 서사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동시에 주제를 은밀하게 운반한다. 특히 라일락잎을 씹는 행위—상운의 예언적 말을 스스로 검증하는 장면—는 소설 전체에서 가장 밀도 높은 순간이다.
다소 아쉬운 점은, 유진의 입체성 부족을 들 수 있는데 유진은 "흰 가운 같은 미소"와 "초롱초롱한 눈"으로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소설 속의 현재로선 단지 녹원의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 역할에 머물러, 독자적인 욕망과 목소리가 희박해 보이는 한계를 만들어 낸다. 그녀가 시대 속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단 한 줄이라도 더 부여된다면 삼각 구도는 훨씬 팽팽해질 것으로 보인다.
총 평
본 작품은 80년대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길을 잃은 한 개인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 수준작이다. 특히 '던지지 못한 보도블록'을 전리품이자 죄책감으로 간직하는 화자의 모습은 당시를 통과 해온 세대에게는 깊은 위로를,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 이면의 인간적 고뇌를 전달하는 힘이 느껴진다.
역사의 큰 물결 앞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작가는 고발도 변명도 없이 정직하게 쓰고 있다. 그 정직함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Ĝis revido, mia juneco!" — 마지막 한 줄이 소설 전체를 뒤에서 조용히 안아주는 방식은, 이 작가가 언어를 진심으로 다루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박정섭 작가의 신인상 수상을 거듭 축하하며 더욱 정진하여 우리 시대의 시대성을 깨우고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힘 있는 작가로 거듭나기 바란다.
심사위원합평
권 민 소설가의「남겨진 목소리」
남겨진 목소리
권민 작가의 소설 <남겨진 목소리>는 상실 이후의 시간을 견뎌내는 남겨진 사람들의 침묵과,그 침묵 속에 숨겨진 진실을 '글자'라는 매개체로 담담하게 풀어낸 좋은 작품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신파에 빠지지 않는 절제된 문장력이 돋보인다. 특히 소리(목소리)를 잃은 인물과 시력을 잃어가는 인물, 그리고 감정을 억누르는 인물을 한 공간에 배치하여 '비언어적 소통'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있다.
형 도현을 사고로 잃은 동생 서인과 시각이 나빠진 아버지가 그 빈 자리를 고스란히 안은 채 살아가는 집에, 어느 날 저녁 낯선 여자 유리가 찾아온다. 말을 잃은 여자다. 그녀는 수첩과 펜으로만 말하며, 도현과 구청 도서관에서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유리는 하룻밤 묵다가 사흘을 머문다. 그 사이 그녀는 가족이 몰랐던 도현의 얼굴을 조금씩 꺼내 놓는다. 칭찬받은 날일수록 더 지쳐 보였다는 것, "가족도 실망할까 봐" 버텼다는 것, 하루만 없어지고 싶다고 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묻는다 — 마지막에 뭐라고 했습니까. 유리는 적는다. 도현이 자신을 차 앞에서 밀어내며 남긴 말은 단 하나였다고.
살아야 한다.
유리가 떠난 뒤 집에는 그녀의 손버릇만 남는다. 얼마 후 그녀의 책이 도착하고, 서인은 도현의 방 책상 위에 그 책 한 권을 올려둔다. 그날 밤, 서인은 처음으로 빈 종이에 펜을 댄다.
침묵의 서사화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유리의 목소리 없음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소설 전체의 리듬을 결정한다. 라고 보아야 한다. 수첩을 넘기는 속도, 펜이 멈추는 자리, 한 줄을 쓰기 전의 공백 — 이것들이 산문 안에서 실제 호흡처럼 작동하며 말 없이도 감정이 전달되는 소설적 공간을 설득력 있게 구축했다.
감각적 절제 역시 두드러진다. "구두 끝이 젖어 있었다",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더듬는다", "라디오의 지직거리는 소리" 같은 디테일들이 슬픔을 직접 호명하지 않으면서도 슬픔을 만들어 낸다. 정서를 설명하지 않고 사물과 동작에 담은 결과다.
도현의 부재를 채우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죽은 사람이 단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으면서, 운동화·회색 후드·영수증 뒷면 메모·책상 위 스탠드를 통해 그가 계속 거실 안에 있는 느낌을 준다. 부재를 현존으로 치환하는 솜씨가 능숙하다.
소설 속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판사 직원인 태경의 등장이 다소 기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라고 보여진다. 유리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 역할은 좋으나, 서인과의 대화에서 주제 의식을 너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조금 더 여백을 두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 평
「남겨진 목소리」는 죽음 이후를 다루면서도 죽음보다 살아남음을 더 정직하게 직면한 소설이다. "살아야 한다." 는 한 문장이 명령과 부탁과 건네는 손 사이 어딘가에 놓이는 방식이 이 작품의 핵심 감동이며, 그 문장 하나를 위해 소설 전체가 준비된 구조로 읽힌다. 문장의 결이 고르고, 침묵을 다루는 방식은 세심하다. 몇 군데 서사적 과잉을 다듬으면 완성도가 한층 높아질 수 있겠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권 민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첫 출발을 축하드리며 더욱 힘쓰고 갈고닦아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여운을 주는 훌륭한 소설가로 거듭나주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합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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