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년 문학고을 계간지 하반기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당선 심사평 <제 85회 1차 공모>
엘리트 문단의 산실 / 등단의 길잡이
김종한 시인의 <생각의 돛을 다시 고쳐 매고> <무너질 수 없는 가장이란 명찰>
개인적 상징과 철학 그리고 서사의 힘
김종한 시인의 <생각의 돛을 다시 고쳐 매고>는 삶을 항해에 비유하는 고전적 상징 체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개인적 체험의 내면화 과정을 통해 실존을 보여주는 탄탄한 작품이다. 또한‘운명’, ‘파도’, ‘돛’, ‘어부’ 등의 여러 이미지가 시의 구성을 유사성과 연결성으로 이어주고 있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세월의 식단”이라는 은유는 매우 철학적이다. 이는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던져진 존재’(facticity)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화자는 그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생각의 돛을 다시 고쳐 매는” 행위를 통해 주체적 결단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실존적 각성을 향한 의지의 서사로 전환된다. 문장 구조는 선언적인 어조를 유지하며 비유 역시 명료하게 제시된다. 이러한 특징은 작품의 설득력을 높이며, 시의 상황에 집중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김종한 시인은 작품으로 표현한 불확실성을‘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하면서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인간의 의지적 태도를 강조한 구성으로 주제를 강조한다.
<무너질 수 없는 가장(家長)이란 명찰>은 ‘가장’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중심으로 개인의 내면과 책임을 탐색하는 서사가 매우 두드러진 작품이다. 특히 ‘명찰’이라는 상징은 매우 효과적으로 시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외부로부터 부여된 역할에 의해 규정되는 현실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의 핵심은 ‘버텨야 하는 존재’로서의 가장이다. 이는 감정을 유보해야 하는 존재의 비극성까지 시에서 내포한다. 화자는 “아주 가끔은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싶다”라는 고백을 통해 균열을 드러내지만, 곧바로 다시 명찰을 확인하며 역할로 복귀한다. 이 반복 구조는 개인과 역할 사이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개념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세계는 그것을 보장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인식이다. 시인의 문장도 과장된 감정 표출을 절제하고 가장이라는 역할에 내재된 책임과 고독을 담담하게 드러내며‘지속해야 할 삶’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김종한 시인은 화자의 내면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시선이 매우 깊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한미옥 시인의 <마른 풍경> <최초의 죄책감>
정지의 긴장과 자기 인식의 깊이
한미옥 시인의 <마른풍경>은 외부 풍경을 조명하며 허수아비라는 중심 이미지를 중심으로 존재에 대한 서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묵묵히 마른 벌판에 서 있으며, 두 팔을 내리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관찰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잔바람이 죽었다”라는 시간의 흐름과 생명성의 소멸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특히 매우 눈에 띈 것은 인간적 성격을 사물에 투사하는 의인화 기법을 통해 풍경 자체를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확장시키는 부분이다. 이는 이상의 시에서 보이는 사물과 주체의 전도적 시선과 일정 부분 상통한다. 허수아비의 형상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팔 끝에 걸어둔 하늘이 무거웠기 때문”이라는 시어는 존재가 짊어진 보이지 않는 책임, 시간, 혹은 의미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에서 나타나는 ‘기다림 속의 정지된 존재’와도 유사한 정서를 환기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무언가를 감당하고 있는 상태이며, 바로 그 정지의 긴장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또한 한미옥 시인이 만들어 낸 이미지 간의 연결이 은유적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정서적 흐름을 형성한다. 이는 작품의 건조한 정서와 부합하며, 독자로 하여금 ‘마름’의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
<최초의 죄책감>은 유년기의 사소한 경험을 출발점으로 하여 죄책감의 기원과 그것이 형성하는 자기 검열의 구조를 탐색하는 산문시다. 작품의 핵심은 ‘포장’이라는 반복적 은유에 있다. 화자는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보다 “괜찮다”는 말로 감정을 덮어온 과정을 서술하며, 그 과정이 어떻게 하나의 습관적 방어 기제로 자리 잡았는지를 드러낸다. 또한 “괜찮아요”라는 시어는 단순한 언어 습관보다 자기 부정의 언어로 보여진다. 화자는 자신의 진심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부정하고 다른 언어로 대체한다. 이로써 ‘진짜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진다. 특히 지렁이의 이미지는 매우 강렬한 상징으로 작동한다. “반지 같은 마디를 쪼개어 피를 흘리는 지렁이”는 분절된 자아와 억압된 감정의 물리적 형상화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의식의 흐름 기법에 가까운 서술이은 화자의 불안정한 내면 상태를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이 작품은 개인의 미시적 경험을 통해 단순한 회고를 넘어서 자기 인식의 깊이를 확장하는 실존적 성찰의 기록이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한상윤 시인의 <낮달> <들꽃이란>
시의 여백과 아포리즘
한상윤 시인의 <낮달>은 ‘낮달’이라는 비가시적이면서도 은근한 존재를 중심으로 미묘한 감정과 주저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달은 밤과 결부된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낮에 드러난 달을 통해 ‘드러나서는 안 되는 감정’ 혹은 ‘조심스러운 사랑’의 정서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상징의 전복이 이루어진다. “낮에 피어 / 더욱 애틋한”이라는 시어는 존재의 조건이 감정의 깊이를 규정한다는 서정을 보여준다. 특히 “이 틈에 / 살짝, 그리고 재빠르게 / 입맞춤을 할까 보다”라는 시어는 긴장감의 찰나를 포착한다. 문장 구조는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여백이 중요한 의미를 형성한다. 과도한 수사를 배제한 대신 이미지와 감정 사이의 간극을 통해 독자의 해석을 유도하는 방식은 동양적 미학, 특히 ‘여백의 미’와도 상응한다. 한상윤 시인은 추상적인 감정의 접근을 매우 조심스럽게 사랑스럽게 본질에 대한 탐색을 효과적으로 이 작품에서 보여준다.
<들꽃이란>에서는 들꽃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시인의 아포리즘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자연을 도덕적 성찰의 거울로 삼는 전통적 시적 경향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시인의 매우 깊은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발길에 밟혀도 / 신음 한 번 없는 것”이라는 시어를 통해 들꽃의 존재 방식을 ‘침묵’과 ‘인내’로 보여주며, 이는 자연의 속성에 대한 묘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지향해야 할 태도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치다. 이어지는 “괜찮아요 / 웃으면서 일어서는 것”은 들꽃의 의인화를 통해 ‘용서’와 ‘회복’이라는 인간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명확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인의 간결한 언어와 명확한 구조를 통해 독자에게 직관적인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이 작품은 들꽃이라는 소박한 존재를 통해 인간의 태도를 성찰하게 만드는 힘과 감각을 환기하는 데 의미 있는 힘을 보여준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조병제 시인의 <송화> <달빛>
존재론적 사유와 정적 이미지의 형상화
조병제 시인의 <송화>는 극도로 절제된 언어 속에서 존재의 본질과 지속성에 대한 사유를 응축해 낸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소나무와 송화를 소재로 한 자연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형태를 초월한 생명력’이라는 존재론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꽃 같지 않으니 / 꺾이지 않고”라는 시어는 통념적 아름다움에 대한 전복을 시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 존재를 드러내는 대신 바람이라는 외부 조건에 자신을 맡기고 결과적으로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만 년 청산 / 소나무 거기 있다”라는 시간의 개념을 확장시키며 시인은 깊은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한다. 단순한 풍경 묘사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는 존재의 자리, 혹은 ‘지속의 힘’를 상징화하여 조병제 시인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수묵화 같은 이 작품은 존재론적 사유를 끌어내며 설명하지 않고 남겨두는 방식, 그리고 이미지의 극단적 절제를 통해 독자의 사유를 확장시키는 힘을 보여준다.
<달빛>은 감각의 절제를 통해 정적(靜的) 세계를 구축하면서, 그 안에 미세한 균열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긴장을 형성하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는 고요한 자연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질적인 소리를 끌어들임으로써 시적 공간을 흔들어 놓는다. “파도는 소리 없이 / 밀려왔다 밀려간다”라는 시어를 통해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무음의 파도’를 설정함으로써, 정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러한 정적 이미지의 구축은 정지용의 초기 서정시에서 보이는 감각의 정제와 유사한 결을 지닌다. 이어지는 “바다는 은빛을 머금고 / 적막만 흐른다”는 시어를 통해 시인은 시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분위기를 결합한다. ‘은빛’은 달빛의 반사이자 시간의 정지 상태를 상징하며, ‘적막’은 단순한 고요를 넘어 존재의 깊은 가라앉는 감각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고요를 “무당의 꽹과리 소리”라는 청각적 요소의 개입으로 깨지는 장면을 연출하며 감각적 이미지 충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정적 세계 속에 미세한 파동을 삽입함으로써, 고요와 흔들림, 자연과 인간, 침묵과 소리 사이의 긴장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조병제 시인의 절제된 언어와 감각의 선택적 배치가 돋보이며, 짧은 시 안에서도 충분한 밀도를 보여주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수필 부문
김호용 작가의 <공감은 우정을 오래 남게 하는 방식이다>
<공감은 우정을 오래 남게 하는 방식이다>는 관계의 지속 조건을 ‘공감’이라는 하나의 태도로 압축하여 풀어낸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친구 관계의 변화라는 일상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글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회고 뿐 아니라 ‘우정이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특히 유년기의 자연스러운 친밀성과 성인기의 선택적 관계를 대비시키며,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는 관계의 조건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안정감과 주제 의식이 분명하다.
이 글의 핵심은 ‘같음’이 아니라 ‘공감’이 관계를 지속시킨다는 통찰에 있다. 어릴 때의 우정이 동일한 환경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면, 성인의 우정은 차이를 전제로 다시 이어지는 관계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 관계를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율되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글은 타자 이해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데, 이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라는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태도를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글의 사유는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글은 ‘공감’을 감정적 동조가 아닌 ‘머무는 태도’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순간과 짧은 한 문장으로 마음을 건네받았던 경험을 대비시키는 장면은 이 글의 중심을 이루는 핵심 서사이다. 특히 “말은 오갔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물지 못했다”라는 작가의 인식은 관계의 단절이 단순한 소통의 부재보다는‘주의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듣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로 이어지며, 언어와 이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편, 이 글은 공감의 어려움 또한 회피하지 않는다. 피곤함과 자기 감정의 과부하 속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0 공감이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태도임을 드러낸다. 이는 관계를 이상화하지 않고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작가는 글의 진정성을 높인다.
수필의 요건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글의 흐름은 비교적 명확하게 구성을 갖추고 있다. 친구와의 두 장면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의 의미를 정의하고, 이를 다시 관계 일반으로 확장하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관계의 본질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짚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관계를 오래 남게 하는 것은 비슷함이 아니라, 다름 속에서도 서로에게 머물러 주려는 의지라는 주제를 정확하게 드러내며,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성찰해 낸 사유의 밀도가 살아 있는 작품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김명은 작가의 <장한이 아저씨>
개인적 성찰과 설득력 있는 리얼리즘
<장한이 아저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 한 인물을 다시 불러내어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뒤늦은 도덕적 자각을 담아낸 회고적 수필이다. 한때는 ‘놀림의 대상’이었던 인물을 성인이 된 화자가 다시 바라보며, 그 시선의 전환을 통해 인간 존엄과 폭력성을 동시에 조명하고 성찰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의미로 확장하는 수필의 장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의 가장 큰 특징은 ‘시선의 변화’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다. 어린 시절의 화자는 동네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장한이 아저씨’를 희화화하고 그를 하나의 이름이 아닌 조롱의 기호로 노출한다. “에끼 장한아”라는 말이 욕설처럼 쓰이는 장면은 한 개인의 고유한 존재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낙인으로 변형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성인이 된 화자는 그 기억을 다시 호출하며, 과거의 자신이 속해 있던 시선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러한 전환은 자신이 가담했던 무의식적 폭력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이 글은 ‘타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장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를 대상이 아닌 ‘책임져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성인이 된 화자가 느끼는 죄책감은 바로 이 지점인 타자를 타자로 보지 못했던 과거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 글은 언어가 어떻게 인간을 규정하고 고정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장한’이라는 이름이‘어리석음’의 대명사로 변해 버리는 과정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 글에서 ‘장한’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보면서 언어가 한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그를 특정한 위치에 고정시키는 힘을 솔직하게 여과없이 조명한다.
한편, 이 글은 단순히 개인의 반성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은근하게 드러낸다. 장한이 아저씨는 허풍이 심하고 어리숙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지속적으로 조롱과 착취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적 결핍을 환기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수필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수필의 구성 측면에서도 이 글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작가의 구성과 구조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직접적인 사과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글의 정서를 분명하게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글의 가장 큰 힘은 ‘뒤늦게 도착한 이해’에 있다. 어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한 인간의 삶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하나의 존재로 다가온다. 이처럼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 그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며 이 글은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이러한 점에서 김명은 작가의 <장한이 아저씨>는 인간 존엄의 문제를 성찰하는 깊이를 지닌 수필이라 할 수 있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이영욱 작가의 <부러움이란 낯선 손님>
높은 장르 완성도와 안정된 서사 구조
이영욱 작가의 <부러움이란 낯선 손님>은 일상의 한 장면에서 출발하여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 특히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것을 성찰의 계기로 전환해 나가는 수필이다. 오랜 친구와의 재회라는 비교적 흔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지만, 글은 단순한 만남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그 만남 이후 마음속에 스며든 낯선 감정을 끝까지 따라가며 자기 인식의 깊은 층위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수필로서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이 글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바라본다’라는 태도에 있다. 친구들의 풍요로운 삶을 마주한 뒤 느끼는 감정은 자식에 대한 미안함, 배우자에 대한 원망,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뒤섞인 복합적인 정서이다. 그러나 글은 그 감정을 억지로 미화하거나 도덕적으로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혹시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빌려 부에 대한 나의 열망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문장에서 보이듯이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독자에게 강한 신뢰를 형성한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사유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자기 이해가 ‘이야기하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이 글 역시 감정을 서사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해 가는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처음에는 낯선 침입자처럼 등장하지만, 글이 진행될수록 그것은 화자가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여기서 작가의 감정은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또한 이 글은 언어가 감정을 어떻게 규정하고 변형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을 단순히 ‘질투’나 ‘탐욕’으로 단정하지 않고 ‘낯선 손님’이라는 은유로 표현한다. 이 표현은 감정을 부정하거나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게 해 준다. 이러한 언어적 태도는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킨다. 이 미묘한 거리감이야말로 감정을 성찰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이영욱 작가의 서사 구조 또한 안정적이다. 특히 딸의 말은 전환점으로서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도움 없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게 키워 놓았는데 왜 그래요?”라는 문장은 화자가 놓치고 있던 가치의 기준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이 장면은 외부의 목소리가 내면의 혼란을 정리해 주는 순간으로 수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깨달음의 장면’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고 있다. 이처럼 김치찌개 냄새와 남편의 포옹이라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은 추상적인 깨달음을 삶의 자리로 다시 끌어내린다. 이처럼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다시 일상의 온기로 돌아오는 결말은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깨달음이 이미 곁에 있던 것들을 다시 인식하는 과정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이 글이 공감력을 얻는다.
이처럼‘부러움’이라는 흔하지만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그것을 자기 이해와 가치 회복의 계기로 전환해 나가는 성숙한 수필을 보여주고 있으며 감정을 서사화하는 과정, 언어를 통한 거리 확보, 그리고 일상으로의 회귀까지 수필이 지녀야 할 요소들이 균형 있게 어우러져 있다. 특히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며 스스로를 해석해 나간다는 점에서 스스로 깊은 공명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다.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합평
열기 닫기